워킹 홀리데이나 어학연수생, 유학생 신분으로 영국에 온 한국인들은 현지 은행 계좌를 만들다가 깜짝 놀랍니다. 한국처럼 방문만 하면 뚝딱 계좌를 만들어주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며칠 전에 미리 계좌 개설 예약을 잡고 가야 합니다. 30분 이상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소지가 불명확하거나 소득이나 유학생 증명을 하지 못하면 거절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영국은 바클레이즈, 스탠다드차타드, HSBC 등 글로벌 은행이 많은 금융 강국입니다만, 편의성만 따지면 한국보다 한참 뒤떨어진 모습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영국의 은행을 처음 방문하려면 예약을 해야한다. 창구 번호표 같은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 /Getty Images Bank하지만 몇 년 전 영국 유학생들의 이런 괴로움이 거의 사라지게 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인터넷 은행의 등장입니다. 우리나라의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처럼 모바일로 간편하게 계좌 개설하고 송금할 수 있는 인터넷 은행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을 고집하던 영국에서는 더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영국의 대표적 인터넷 은행으로는 레볼루트, 몬조, 스타링뱅크, 아톰뱅크, 와이즈가 있습니다. 전 세계 25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레볼루트가 가장 앞서 있습니다. 비상장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기업 가치를 450억 달러(64조4490억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영국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으로는 와이즈가 있습니다. 와이즈는 과거 트랜스퍼와이즈로 알려졌던 외화 송금에 특화된 은행입니다. 2021년 7월 런던 증시 상장 때 80억 파운드(14조129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기술 기업으로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와이즈를 이용할 수 있다. /와이즈 홈페이지와이즈는 2011년 영국으로 일하러 온 에스토니아 출신의 크리스토 카르만과 타베트 히링쿠스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딜로이트 컨설턴트였던 카르만과 스카이프에서 일하던 히링쿠스는 은행을 통해 파운드화를 유로화로 환전하고 송금할 때마다 엄청난 수수료를 물어야 하고 시간도 며칠씩 걸리던 것에 불만을 느꼈습니다. 이들이 IT 시스템을 활용해 저렴하고 간편한 송금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트랜스퍼와이즈의 시작이었습니다.
와이즈는 사업 초기에 발칙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수료가 투명하다는 취지로 지난 2014년 직원들이 ‘낫씽투하이드(nothingtohide·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 나체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 /와이즈 홈페이지와이즈는 개인 고객을 위한 ‘와이즈 어카운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와이즈 비즈니스’, 기업과 글로벌 은행간의 거래를 돕는 ‘와이즈 플랫폼’, 이렇게 세 가지 사업을 중심으로 합니다. 현재 40개 통화로 사업을 운영하고 전 세계적으로 65개의 금융 서비스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업체 모틀리풀은 상장 당시 와이즈를 세계 최대 온라인 송금 기업 페이팔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모틀리풀은 “와이즈의 대담한 문화와 전략이 페이팔의 창업 초기와 유사하다”며 “가입자에게 돈을 주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페이팔이 시장 표준으로 자리 잡았듯이 와이즈도 비슷한 길을 따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와이즈의 현재 시가총액은 106억6000만 파운드(18조8868억원)입니다. 주가는 지난 1년간 27.2% 올랐습니다. 2025 회계연도 3분기(2024년 10월부터 12월) 수익이 3억4950만 파운드로 추산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13% 증가했고 전 분기의 3억 3700만 파운드보다 4% 높았습니다.
최근 1년간 그래프. 작년 여름부터 크게 오르고 있다. /LSE 홈페이지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는 밝은 편입니다. 고객 수는 905만명으로 지난해 20%나 늘었습니다. 글로벌 투자 전문 매체 시킹 알파에 따르면 회사 측은 올해 연간 수익이 15~2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 5년 동안 수익은 연평균 60.7%의 성장률을 기록해 금융 산업의 평균인 2.8%를 훨씬 뛰어넘었다”며 “강력한 시장 입지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와이즈는 고객이 해외 송금을 위해 플랫폼에 잠시 보관하는 현금에서 이자 수입을 챙기는 독특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투자 매체 인베스터스 크로니클은 작년부터 이어진 금리 상승은 와이즈가 이처럼 고객 예금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은행을 통하지 않은 핀테크를 통한 해외 송금이 대세가 되고 있다. /와이즈 홈페이지기업 고객 부문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지난달에는 와이즈 플랫폼은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은행을 위한 글로벌 지불 인프라 계약을 맺었습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널리스트들은 핀테크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서 마케팅과 인프라 투자 비용이 더 들고 수익성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합니다. 작년에는 카르만 CEO가 세금을 잘못 냈다고 영국 금융당국에 35만 파운드의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똑똑한 금융 서비스를 표방하는 와이즈가 앞으로 투자자들에게 ‘똑똑한’ 수익을 내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