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날레’는 왜 홍상수를 사랑할까…신작, 장편 경쟁 부문 초청

홍상수 신작
내달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장편 경쟁 부문에서 등 18편과 황금곰상 경쟁

1997년 이후 12편이 영화제 초청된 ‘베를린 단골’
“인간관계 흐름에 깊은 통찰” 보여준다는 평가

봉준호 , 민규동 도 영화제 초청
지난해 2월24일 열린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행자의 필요'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 /AFP, 연합
지난해 2월24일 열린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행자의 필요'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 /AFP, 연합
홍상수(65) 감독을 향한 ‘베를리날레(베를린국제영화제)’의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매년 2월이면 독일 베를린 중심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극장 앞에 펼쳐진 레드카펫 위에 목도리를 두른 채 나타났던 홍 감독의 모습을 올해도 보게 됐다. 서른 세번째 장편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내달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에 초청받으면서다. 베를린 영화제가 홍상수에게 초청장을 보낸 건 벌써 열두 번째. 베를린은 왜 홍상수에 푹 빠진 걸까.

6년 연속 초청, 은곰상 트로피만 5개22일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홍 감독의 신작은 올해 장편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 19편에 이름을 올렸다. 동갑내기 감독이자 <비포 선라이즈>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블루문> 등과 황금곰상 등을 두고 맞붙는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다음 달 13일 개막하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2월1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4회 베를린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오른쪽)이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2월1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4회 베를린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오른쪽)이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묶이며 권위를 자랑하는 베를린 영화제 초청장은 영화계에 값진 소식이다. 특히 한국 영화 시장의 불황이 길어지고, 최근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홍 감독에게 있어선 놀라운 일은 아니다. 홍 감독은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1997년 첫 초청을 받은 이후 올해까지 총 12편의 영화를 상영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도망친 여자>부턴 6년 연속 발 도장을 찍고 있다.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은곰상 여우주연상(김민희)을 수상하고, 지난해 <여행자의 필요>가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관련 리뷰]막걸리 마시는 이방인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베를린이 반한 홍상수의 시선 “달콤씁쓸한 인간관계 통찰”

베를린을 포함해 유럽 영화계 전반에서 홍상수에 대한 애정은 상당하다. 예술영화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선 잘 알려진 K팝 스타보다 홍상수가 더 유명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그만큼 홍 감독의 작가주의적 색채가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한 수입배급사 대표는 “한국 대중문화가 알려지기 오래전부터 해외 영화제에서 홍 감독은 스타였다”며 “연출방식이나 스토리텔링에 감명 깊다는 평가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스틸_전원사
홍 감독의 작품은 평단과 일반 대중의 감상이 사뭇 다르다. 매년 한 편씩 작품을 개봉할 만큼 다작 감독인 홍 감독의 영화를 두고 매번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동어반복이란 평가도 적잖다. 김민희, 권해효, 하성국, 조윤희 등 작품마다 같은 배우들이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연기하기 때문이다. 반면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 평단은 홍 감독을 “현대 영화에서 일관되고 혁신적인 스토리텔러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매번 똑같을 것 같은 일상을 독특하게 변주하고, 인물의 감춰진 욕망 등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내며 작품마다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재클린 리앙가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홍 감독의 신작을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발표하며 “홍상수 신작은 젊은 여성이 연인을 가족에게 소개할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며 “인간관계 흐름에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달콤하면서 시큼한 코미디에 홍상수만 한 감독이 없음을 다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영화제작사 전원사에 따르면 트리시아 투틀스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초청장을 통해 “신작을 보며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흐름을 직관적이라 느꼈고, 그러면서도 많은 순간 익살스럽고 웃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스틸_전원사
홍 감독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를린영화제가 칸, 베니스 영화제보다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약탈한 유물을 아프리카 본국 베냉으로 반환하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호메이>가 지난해 황금곰상을 탄 게 대표적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인간 자체에 초점을 둔 작가주의적 영화들이 선전하는 등 베를린 영화제의 경향성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만큼, 예술적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한편 올해 베를린영화제에는 오는 2월 국내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스페셜갈라 부문에, 민규동 감독의 <파과>가 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