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 '속도'를 그린 화가 라바스

[arte] 서정의 어쩌면 나만 아는 명작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예술가
아방가르드 낭만주의자
알렉산드르 라바스(Alexander Labas)
포스트 미래주의적 표현주의-알렉산드르 라바스의 모든 것

소련의 화가 라바스는 현대 문명의 혁신, 20세기라는 세계의 특별한 미학에 관심을 가졌다. 기술은 그에게 서정적인 영감의 원천이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흥분감에 가득 차 바라보고 경험하게 해줬다. 이젤 화가협회(OST, 1925~1932)의 창립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 협회의 회원들은 예술이 기능적이고 유용한 대상과 사물의 형태로만 실현돼야 한다고 선언하는 제조업자들로부터 이젤 예술을 옹호했고, 노동 및 기술적 성취의 주제를 혁신적인 형태로 구현하고 일상생활의 역동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라바스가 자기 그림에서 취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움직임과 속도였다.<비행장 가는 길의 저녁>(1928)은 라바스의 작품에서 고전주의 시기(1920~1930년대)에 속하는 작품이다. 항공이라는 주제가 풍경과 결합 되어 구성이 독특하고 극적인 분위기다.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는 막 보초를 지나쳤다. 비행장이 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마치 자전거 타는 사람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 위로 막 이륙한 비행기가 보이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을 지키는 경비초소가 있는 것을 통해 비행장이 지척임을 알 수 있다.

높다란 나무, 타이어 자국이 있는 숲길, 길의 양옆으로 펼쳐진 녹지가 탄탄하게 묘사된 가운데 반짝거리는 붉은 선이 군데군데 강조된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달리는 도로의 대각선과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가 캔버스에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라바스는 독창적인 그림 언어로 하나의 우주로서 세상과 자연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전달한다.
알렉산드르 라바스 &lt;비행장 가는 길의 저녁&gt; (1928)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알렉산드르 라바스 &lt;비행장 가는 길의 저녁&gt; (1928)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알렉산드르 라바스는 1920~1930년대 재능을 꽃피운 러시아의 전위적 낭만주의자다. 1900년생이니 20세기를 열어젖히며 세상에 나온 셈이다. 그의 조부모는 비텝스크 출신이었는데(비텝스크는 샤갈의 고향이기도 하다) 상당히 정통적인 유대인 가정으로(당시 비텝스크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가족의 뿌리는 리투아니아로 거슬러 올라간다.여섯 살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리가를 거쳐 1912년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스트로가노프 예술산업학교에 입학해 금속, 도자기, 에나멜을 두루 다뤘고, 일리야 마시코프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1917년부터는 국립 아트 스튜디오(후에 브후테마스-'고등 예술 및 기술 워크샵'으로 개편)에서 공부했고, 말랴빈과 콘찰롭스키의 작업장을 두루 거쳤다. 1919년 동부 전선 제3군의 예술가였고, 제대 후에는 모스크바로 돌아와 학업을 마쳤다.

그는 말레비치, 칸딘스키, 쿠즈네초프, 렌툴로프에게 그림을 두루 배웠는데, 색채는 라바스 작품의 주요 표현 수단이 되었다. 1924년부터 브후테마스에서 회화 및 색채 과학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광학 법칙을 회화에서 이론적으로 실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32년 소련에서 형식주의에 대한 투쟁이 시작돼 1935~1936년에 결국 형식주의로 기소됐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에서 구매하지도, 전시회에 초대되지도 않아 그는 연극 무대 미술가로 일하면서 각종 박람회의 소련 파빌리온을 위한 파노라마와 디오라마를 만들었다. 이 망각과 침묵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1983년 8월 30일에 사망했고 바간코보 묘지에 묻혔다. 그는 평생 세 번의 결혼을 경험했는데 세 번째 아내는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를 사사하며 바우하우스를 졸업한 후 1935년 러시아를 찾았던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레오니 노이만이었다.소련의 찬란한 문명을 그리는데 왜 형식주의로 기소되었을까? 라바스가 경탄한 지점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식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표현주의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이미지라고, 부르주아 미학, 이상주의라 비판받았다. 어른거리는 윤곽이 미심쩍다고도 했다.

형식주의자들은 기법과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독창성과 실험성을 옹호했다. 흔히 시클롭스키의 <기법으로서의 예술>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로 대표되며 미래주의 시운동, 몽타주 영화 운동 등 활발한 예술 실험으로 이어지다가 1930년대 급격히 소멸한다. 1932년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련의 공식 예술 노선으로 선포되면서 숱한 예술가들이 형식주의자로 내몰렸다. 말레비치,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 리스트는 길고 길다.

<비행기 선실에서>(1928)가 전하는 독특한 정서를 보자. 비행 물체 안에 있는 사람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기내에 있는 사람들과 기류에 영향받는 유선형으로 된 외피의 이미지를 결합하는 몽타주 원리를 사용한다. 수채화 색채의 미묘함, 색상 사용의 섬세함은 특별한 시학, 작품의 어떤 후광을 만든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풍경에 음악성이 가미된다. 밝은 은빛 톤을 기반으로 한 여러 층위 색채의 미묘한 뉘앙스, 진동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붓질은 그의 작품을 공간적 자유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알렉산드르 라바스 &lt;비행기 선실에서&gt; (1928)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1935~1937년 전시회 패널로 작업했던 <미래 도시>를 보자. 물론, 라바스는 이러한 파노라마와 디오라마를 종합예술로 여기고 귀한 이미지들을 남겼다. 파노라마와 디오라마 일에 둘러싸여 제한된 활동만 하던 그가 다시 ‘발굴’된 것은 1966년의 일이었다. 그룹 전시회가 열렸고, 라바스에 대한 오랜 망각 끝에 처음으로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방명록에 “초기 라바스는 아름답다”라고 썼다. 1976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은 쿠즈네츠키모스트의 소련 예술가연맹 전시관에서 열렸다.
알렉산드르 라바스 &lt;미래 도시&gt; (1935)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라바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최초의 비행선, 증기 기관차 및 에스컬레이터

라바스의 이미지는 마치 실제로 비행기나 증기 기관차가 돌진하여 우리에게 바람의 흐름을 쏟아붓고 기계의 세부 사항은 차마 볼 수 없게 하기라도 한 듯 신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라바스의 시간은 걷는 속도와는 거리가 먼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찍이 1912년에 페르낭 레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물에 대한 관념은 덜 고정되어 있고, 사물 자체는 이전보다 덜 드러난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빠른 기차에 의해 교차하고 찢어진 풍경은 서술적 의미를 잃지만, 종합적 의미를 얻는다. 자동차의 유리는 획득된 속도와 함께 사물의 일반적인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그 시절 라바스에게 모든 것은 경이로워 보였고 밝은 태양에 의해 빛나며 이성의 힘에 지배받는 듯 보였다.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최초의 소비에트 비행선>(1931)이다. 붉은 별이 빛나는 선체가 여러 그룹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참여로 거대한 녹색 들판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빠른 붓놀림을 통해 비행선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과 격납고에서 그것을 끌어당기는 사람들의 노력을 전달한다. 거대한 질량의 움직임으로 인한 공기의 진동은 안개 속의 윤곽을 녹이고 은빛 비행선은 주변 공기와 거의 합쳐지며 찬란하다. 라바스가 전하는 계몽된 세계의 이미지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알렉산드르 라바스 &lt;최초의 소비에트 비행선&gt; (1931)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같은 1931년에 작가는 제1차 5개년 계획에 <투르크시브 최초의 증기 기관차>를 헌정했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철도를 조명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고, 표현주의 화가 라바스는 아방가르드의 감성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일면 건조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윤곽을 흐리게 하고, 색상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금속 괴물의 속도와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열기를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의 일반화된 시적 비전이 읽힌다. 구도의 중앙에 놓인 붉은 “혀”를 가진 강력한 증기 기관차는 카자흐 사막을 질주한다. 거대한 기관차 주변의 흰색 증기와 녹색 후광의 이미지를 통해 움직임과 속도의 효과를 전달한다. 기관차가 일으킨 공기의 흐름에 군중이 모래를 뒤집어쓴 듯하지 않은가.
알렉산드르 라바스 &lt;투르크시브 최초의 증기 기관차&gt; (1931)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작가의 캔버스에 들어간 다음 대상은 최초의 소련 에스컬레이터 중 하나였다. <지하철에서>라는 간단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 건설은 1931년에 시작되었으며 1935년 5월 15일에 그랜드 오픈이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승객을 받은 역은 13개였고 에스컬레이터는 4개 역에 설치되었다. 그림에서 에스컬레이터는 다채로운 군중을 하늘로 밀어 올린다. 이 움직이는 계단은 무한을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사람을 빛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에는 지하 공간의 밀폐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빛과 공기, 자유롭고 제약받지 않는 움직임의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알렉산드르 라바스 &lt;지하철에서&gt; (1935) / 그림출처. © State Tretyakov Gallery
이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시가 있다.
그가 매료된 것은 기계 구조의 표현력, 강력한 산업 역학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삶의 기회와 아이디어에 매료돼 있었다. 현대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간은 공중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됐고,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으며, 넓은 공간을 눈에 담고 먼 거리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커진 가능성 때문에 인간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 현대의 문제들에 대한 예술적 이해는 과학적 경험의 복합적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그는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삶, 인간의 심리,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감정과 감각의 예민함을 감소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예술가가 이 모든 것을 훨씬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