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바이올린 천재 "난 별 다섯개 중 하나만 겨우 채운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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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인터뷰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이자이·토머스 앤 이본 쿠퍼 콩쿠르 1위
올해 '현의 여제' 율리아 피셔 등과 연주
"신동이란 말 어색해…특별한 사람 아냐"
"너무 재밌어서 새벽 2시 반까지 연습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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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니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델 제수와 함께 ‘바이올린계의 3대 명기(名器)’로 꼽힌다. 한 대에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가격 탓에 해외에서 활약 중인 프로 연주자도 쉽사리 구매하지 못하고 거대 기업이나 재단을 통해 일정 기간 무상 임차하는 형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악기를 찾고 빌리는 일이 평생의 숙제”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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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이 국제 음악 콩쿠르(2021), 레오니드 코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21), 토머스 앤 이본 쿠퍼 국제 콩쿠르(2022) 등에서 전부 1위 자리에 오르며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한 김서현은 이제 해외에서 먼저 찾는 유명 인사다. 2월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협연, 5월 스위스 취리히 톤 할레 실내악 공연, 7월 이탈리아 토스카나 실내악 페스티벌 등을 앞둔 그를 만났다.
▷올해 예정된 해외 공연 일정이 많은데 가장 기대되는 연주는 무엇인가요.
“5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와 함께 하는 실내악 공연이 가장 기다려져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어요. 그와 함께 슈베르트 퀸텟을 연주할 수 있다니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아요.”(율리아 피셔는 힐러리 한, 재닌 얀센과 함께 ‘21세기 바이올린 트로이카’로 불리는 거장 연주자다)
“너무 어색해요. 저랑 도통 안 어울리는 단어 같아서요. 한 번도 제가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연습에 강박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방에서 좀체 나오지 않는다는데.
“강박까진 아니에요(웃음). 연습은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그게 너무 재밌어서 밥 먹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바이올린을 켜게 돼요. 시계를 보지 않다가 새벽 2시30분까지 연습한 적도 있어요. 누가 시켜서 한다면 이렇게 못 할 거에요.”
▷예원학교(중학교) 졸업 이후 홈스쿨링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루빨리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지난해 검정고시를 끝냈고, 올해는 독일 대학 입시를 목표로 틈틈이 외국어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자주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여러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는데 부담감은 없었나요.
“늘 나이가 가장 어린 편이었기에 오히려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경쟁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도 크지 않아서 콩쿠르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죠. 그땐 정말 즐겁게만 연주한 것 같은데 요즘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 때도 있어요. 연주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연주 직전까지도 걱정이 많고 심하게 긴장하는 편인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신기할 정도로 괜찮아져요. 모든 잡생각이 없어지고, 오로지 나에게만 몰두하게 되죠. 심할 땐 아예 기억이 안 나기도 하는데, 그 느낌이 좋아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힘이 제게도 있는 것 같아서요.”
▷한국에선 다음달 금호문화재단 ‘금호 라이징 스타’ 시리즈 리사이틀 무대가 예정돼있죠.
“네. 한 곡 빼곤 전부 처음 공부하는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브람스 소나타 1번,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5번, 포레 소나타 1번을 새로 연습하고 있죠. 레파토리를 한참 늘려야 할 시기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배움의 기회를 잃을 순 없잖아요. 힘들어도 할 건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종 목표는 뭔가요.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의 색깔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해내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별 다섯 개 중에 하나만 간신히 채운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나중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도 해보고 싶고, 브람스 소나타 전곡 음반도 내보고 싶습니다. 현재에 집중하고, 눈앞의 무대들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그날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