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클림트와 에곤 실레처럼...서로 대화해 보세요

설 특집 기사를 열며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거장들의 창작혼
국립중앙박물관서 개막 40여일 만에 10만 관객 돌파
모처럼 긴 연휴, 빈 분리파 화가들과 세대를 넘어 교감할 기회
콜로만 모저, 산맥
콜로만 모저, 산맥
지금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단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입니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3월 3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개막 이후 40여 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윤여정 배우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수많은 명사가 전시장에 찾아와 호평을 남겼습니다. 1900년대 중부 유럽의 중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을 수놓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거장들의 걸작이 나와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탁월한 예술을 낳은 1900년대 비엔나는 결코 평온하고 희망찬 곳이 아니었습니다. ‘저무는 해’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강자에 밀려 그 영향력이 날로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열한 개에 달하는 민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이 빚어졌고, 같은 도시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극심했습니다. 사회 전반에 ‘좋았던 날들이 곧 다 끝날 것’이라는 불안이 만연했던 이유입니다.
큰 포플러 나무 II
큰 포플러 나무 II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빈 분리파 주요 화가들이 젊은 시절 마주한 상황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창립 멤버인 클림트와 콜로만 모저, 요제프 호프만은 모두 넉넉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하지만 빈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빈에서는 모든 일이 50년 늦게 벌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빈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분리파라는 깃발 아래 한데 뭉쳤습니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클림트였습니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던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을 펼쳤고, 후배 화가를 적극적으로 키웠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외친 모저와 호프만은 디자인, 건축 등 일상의 영역으로 예술을 확장했습니다. 함께했기에 이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길로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오스카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막스 오펜하이머와 같은 후배 세대가 자라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선배 화가가 땅을 일군 덕분이었습니다. 실레는 그중 가장 빛나는 열매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누구에게도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하던 그는 클림트에게 인정받은 것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고 자기만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소용돌이치는 내면을 그대로 담아낸 실레는 오늘날까지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입니다. 주요 작가 중 클림트는 선배 세대, 실레는 후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이 두 사람을 잇는 분리파의 여정을 감상하며 우리는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앞세대가 뒷세대에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뒷세대가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됩니다.

다사다난한 이 시기, 모처럼 긴 연휴가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에는 1900년 빈을 산 이들의 마음과 비슷한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설 연휴에는 분리파 화가들이 그랬듯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가족이 함께 나누는 소중한 대화와 교감을 통해 한 해를 이어갈 용기와 영감을 얻는 행복한 연휴 되기를 바랍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