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날 잔소리에 화 솟구친다면…" 의사들 경고한 '이 병'

명절이면 늘어나는 화병
스트레스 심각 단계라면 병원 찾아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절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잔소리 메뉴판’이 오르내린다. 연휴에 만나는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듣는 잔소리별로 용돈을 책정해 스트레스 강도를 표현한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명절이지만 자칫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화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윤나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과거 중년 여성이 주 대상이었던 명절증후군 증상이 최근엔 10~30대 젊은 층에도 흔하게 나타난다"며 "입시와 취업 스트레스, 경제적 부담, 결혼 압박과 사회적 문제까지 더해져 명절 전후 연령에 상관없이 화병 환자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한의학에서 화병은 ‘기(氣)가 막히고 화(火)가 위로 치솟는 증상’을 말한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쌓이면서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나타난다.

답답함과 가슴 두근거림, 소화불량, 두통, 온몸이 쑤시는 증상 등을 주로 호소한다. 우울감, 불면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심하면 만성 분노로 고혈압이나 뇌졸중 등 위험한 신체 증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화병은 분노기, 갈등기, 체념기, 증상기 등 4단계에 거쳐 발생한다. 분노기는 화를 직면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시기다. 분노가 치미는 증상이 특징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노기는 끝난다.

갈등기는 분노기를 지나 분노를 해소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고민이 많고 불안하거나 쉽게 놀라는 등 정신적인 증상이 많다.

체념기는 분노를 억제하고 참는 생활을 지속하는 단계다.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같은 스트레스를 겪으면 증상으로 연결되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

마지막 증상기엔 오랫동안 억울함을 느껴 분노와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많다. 화병의 신체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화병 환자 중 증상기가 가장 많다는 보고가 있다"며 "화병 증상은 특별한 외상이 없어 가볍게 여기면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신체 증상이 나타난 뒤에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화병이 의심되면 지압법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머리를 받치는 근육이 긴장돼 긴장성 두통이 생기기 쉽다.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할 수 있다.

이때 ‘풍지혈’을 지압해주면 좋다. 풍지혈은 뒷목과 머리가 이어지는 곳의 움푹 들어간 부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뒷머리를 감싸 고개를 천천히 움직여주면 근육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불안, 초초, 가슴 답답함을 느낄 때에는 흉골 중앙에 있는 ‘전중혈’을 지압해 긴장을 완화하는 게 좋다. 불안하거나 초초하면 교감신경이 과활성화하면서 흉곽 상부의 근육이 긴장하고 어깨가 올라가 가슴이 움츠러드는 자세가 된다. 이런 자세를 유지하면 스트레스 반응이 더 세질 수 있다.

병원을 찾아 심리 상담을 받거나 약물 치료를 고려하는 것도 좋다.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것을 넘어 환자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는 "화병은 명절이 끝난다고 단기간에 나아지기 어렵고 치료가 쉽지 않은 만큼 예방이 중요하다"며 "화병 예방은 감정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화병 원인이 되는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스스로 이끌어갈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