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4 빅매치'는 남의 일…경쟁 사라진 정비사업 수주전

서울 관악구 봉천14구역 조감도
서울 관악구 봉천14구역 조감도
연초부터 서울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에서 ‘무혈 입성’ 사례가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 불황과 공사비 상승, 정치적 불확실성 등의 난제가 겹겹이 쌓이면서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고 선별 수주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서울 ‘핵심 입지’라는 평가를 받는 용산구 한남4구역 정도만 대형사 간 ‘빅매치’가 성사됐을 뿐 대다수의 다른 사업장들은 ‘시공사 모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배·용산 등 수의계약 행렬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7구역은 오는 31일까지 수의계약을 위한 시공사 입찰을 진행한다. 서초구 방배동 891의 3 일대에 지하 4층~지상 19층, 316가구를 짓는 공사다. 총사업비는 1772억원이다. 작년 10월 현장설명회에 9개 건설사가 참여해 관심을 보였다. 서울 지하철 2·7호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 수가 적어 사업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간 네 차례에 걸친 시공사 입찰에서 모두 경쟁 구도가 성립하지 않아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강남권의 다른 정비사업장 상황도 비슷하다. 송파구 문정동 가락1차현대 재건축조합은 지난 21일 시공사 입찰 공고를 마감했는데 롯데건설만 입찰해 유찰됐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등 9개 건설사가 관심을 보지만 결국 경쟁입찰은 이뤄지지 않았다. 3호선 경찰병원역과 5호선 개롱역, 8호선 문정역이 두루 가까운 입지인데도 경쟁이 이뤄지지 못했다. 조합은 재공고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에 따라 2회 이상 경쟁 입찰이 무산되면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롯데건설이 이달 마수걸이로 수주한 용산구 신용산역 북측1구역도 수의계약으로 따낸 사업이다. 관악구 봉천14구역은 GS건설이 경쟁 없이 깃발을 꽂을 것으로 보인다. 조합은 지난 23일 수의계약을 위한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했는데 GS건설만 응했기 때문이다. 시공사 선정총회는 오는 3월 열릴 전망이다. 9호선(신방화역) 역세권인 강서구 방화6구역도 이달 수의계약 공고를 올렸다. 오는 31일까지 시공사 입찰을 받고 있다. 2016가구 규모의 대형 사업장인 노원구 상계5구역의 수의계약 입찰에는 GS·롯데건설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한 상황이다.

“건설사 선별 수주 심해질 것”

경쟁 실종은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의 31개 정비사업 현장 가운데 29곳이 수의계약을 맺었다.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아파트와 강남구 도곡개포한신 재건축 등에서만 경쟁이 성립됐다. 강남구 신반포한신27차(SK에코플랜트), 개포주공5단지(대우건설), 동작구 노량진1구역(포스코이앤씨) 등 ‘대어’들도 줄줄이 수의계약 행렬에 올라탔다. 올해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최근 한남4구역을 두고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치열하게 맞붙긴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비업계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한남4구역 시공권 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향후 여의도나 압구정 수주의 전초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과열 양상을 띠었던 것”이라며 “금융비용과 인건비 등 공사비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공격적 수주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공사비 내역을 세세하게 산출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해 건설사 입장에선 입찰 경쟁에 나서는 것 자체가 비용이 드는 행위”라며 “만약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이미지 타격도 작지 않아 눈치싸움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남4구역보다 규모가 더 큰 한남5구역의 경우 DL이앤씨의 수의계약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DL이앤씨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사업장인 만큼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쟁에 뛰어들 건설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