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하다 교묘해…순식간에 1억 털어간 카드 배송원

1억 넘는 ‘고액 보이스피싱’ 피해, 베이비부머 세대 몰렸다

고액 보이스피싱 피해, 60대 44% 달해
교묘한 방식…은퇴 자금 많아 표적으로
기관을 사칭해 전화로 고액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베이비부머' 세대인 60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세대보다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사용 경험이 많으나 사기 수법에 취약하고 은퇴 이후 자금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으로 1억원 이상 손해를 본 피해자의 연령대는 60대(1955년~1964년생)가 44%로 가장 높았다. 이어 20대 이하(17%), 50대(14%), 30대(10%)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차순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을 보여 많은 범죄 피해에 노출된 세대로 꼽혔다.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베이비부머 세대에 집중된 것은 베이비부머가 역설적으로 어느 정도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세대기 때문이다. IT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70대나 80대 이상은 오히려 고액 피해 비중이 8%나 1%에 불과했다.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은 상당히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요샌 카드 배송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많다. 피해자가 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하면 가짜 배달원은 “명의도용 피해가 우려된다”며 허위 카드회사 고객센터 번호를 알려주고 전화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 설치를 권하고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조작해 악성 앱을 설치한다. 악성 앱은 모든 전화를 가로채고 녹음, 위치 기능도 탈취해 피해자의 행동을 통제한다.

교묘한 방식으로 인해 베이비부머 세대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많이 당하는 추세다. 금액과 상관 없이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20대 이하와 30대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해 1~11월 연령별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59.8%가 2030세대였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아 피해금액은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적었다.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 이후 현금이 넉넉하다는 점도 피해에 노출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주위에 함께 상의해줄 사람이 없는 낮 시간대에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지난해 1~11월 7257억원으로 전년 대비 62.2% 증가했다. 건수는 1만8676건으로 전년(1만8902건)과 비슷했지만 건당 피해액이 커진 결과다.

또 정보 접근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권위주의적인 시기에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보낸 베이비부머 세대는 정부 부처, 은행, 카드사 등 안전할 것으로 보이는 기관에서 연락했다고 하면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긴급하게 주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고립된 장년층일수록 범죄 표적이 되기 쉬운 편”이라며 “구체적인 범죄 수법까지 숙지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