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회사 잘릴 뻔"…명절선물 건넸다가 '날벼락' [김대영의 노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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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카드, 명절선물 건네다
"지출결의 없다"며 징계사유로
법인카드 영수증 미제출도 지적
회사, 8가지 사유로 '징계해고'
법원 "징계사유 아냐…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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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2행정부(재판장 김병식)는 최근 한 버스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 회사는 2022년 1월 징계위원회를 거쳐 총 8가지 사유로 사내이사와 대표직을 맡았던 관리부장 A씨를 징계해고했다.
A씨는 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감사보고서를 네이버 밴드, 버스기사 대기실 등에 공개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명예훼손 등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 부하직원이 횡령을 저질러 징계해고를 당하기까지 업무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도 문제가 됐다. 중노위와 법원은 모두 이를 정당한 징계 사유로 봤다.
하지만 나머지 징계 사유 6가지를 놓고 회사와 A씨 간 입장이 엇갈렸다. 회사는 A씨가 법인카드를 사용하고도 사용내역이 명시된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징계 사유로 지목했다. 1심은 이를 징계 사유로 인정했지만 2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회사는 중노위 심문 당시 '단순히 식당에서 주는 영수증을 제출해달라는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이러한 영수증은 카드사에서 수령한 '사용명세서'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명절선물로 시의원에게 회사 자금으로 산 50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 기프트카드를 선물한 사실은 1, 2심 모두 징계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줄곧 A씨가 결재를 거치지 않고 경리과장 몰래 휴무일에 금고를 열어 지출결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기프트카드를 꺼낸 다음 임의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관례대로 명절선물 등으로 기프트카드를 사용했을 뿐"이라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회사가 그간 기프트카드를 쓰면서 지출결의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A씨가 다음 날 곧장 경리담당자에게 사용한 사실을 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도 "회사 스스로도 기프트카드 사용에 관한 별도 규정이나 지침, 절차 등은 없고 명절선물 지급 명단을 관리한 바 없다고 자인하고 있다"며 "A씨가 기프트카드를 사용함에 있어 회사에 지출결의서를 작성·관리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전 직원 등과 얽힌 각종 소송전에서 패소한 책임도 A씨가 지게 됐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서도 징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 관련 소송은 경영판단에 속하는 사안이고 A씨만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어서다. 이 회사는 근로자들이 인수한 자주관리기업으로 '자주관리위원회'를 통해 경영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회사 업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징계 사유도 증거 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1, 2심 모두 징계 사유 대다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중노위 판정이 적법한 것으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회사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해야 하고 1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회사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