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희대의 바둑 반칙·기권패

앞으로 바둑 역사에서 다시 나오기 쉽지 않은 반칙패와 기권패가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22일과 2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3번기 2국과 3국에서다. 1국에서 변상일 9단에게 승리한 커제 9단이 2국에서 82수 만에 반칙패를 당했다. 사석(死石·잡은 상대 돌)은 반드시 사석통(바둑통 뚜껑)에 넣어야 한다는 한국기원의 바뀐 규정을 깜빡한 탓이다. 잡은 돌을 계시기 근처에 아무렇게나 뒀다가 경고와 2집 공제 벌점을 받은 뒤,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질러 반칙패로 처리됐다.

커제의 사석 관리는 중국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사석으로 상대 집을 메운 뒤 남은 집으로 승패를 따지지만 중국에선 바둑판에 살아있는 돌로만 집을 세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은 대국 중간에 사석 수를 잘 살펴볼 수 있게 해달라는 기사들의 요청에 지난해 11월 규정을 바꿨고 같은 달 삼성화재배에 앞서 중국과 일본 기사들에게 설명했다.커제는 그제 열린 3국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155수가 놓인 뒤 심판이 경고와 2집 공제 벌점을 주자 커제는 경고가 늦었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퇴장했다. 커제가 대국을 이어갈 뜻이 없음을 확인한 심판은 기권패를 결정했다. 커제가 중국바둑협회를 통해 한참 뒤 재대국을 요청했지만 변상일이 거절, 우승상금 3억원은 변상일에게 돌아갔고 커제는 준우승 상금 1억원만 받게 됐다.

‘중국 바둑의 우상’인 커제가 이렇게 패하자 중국 팬들이 한국기원과 변상일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룰은 절대적이다. 특히 커제가 심판에게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을 한 것은 예와 도를 중시하는 바둑판에선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자기 과실은 돌아보지 않은 채 대국을 포기한 것도 볼썽사나웠다. 불똥은 후원사에도 튈 수 있다. 커제가 어제 시상식에 불참한 데다 중국 바둑 팬들도 한국 측을 거세게 비난하면서다. 지난해 삼성화재배 우승자인 딩하오 9단은 후원사의 브랜드 홍보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수담(手談)’이 돼야 할 바둑이 국가 간 감정싸움으로 번질까 걱정스럽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