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녹색갈증'과 농촌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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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농협대 교수‘우리는 촌에서 마로 사노/도시에 가서 살지/라디오에서 노래하는 것 들으면 참 슬프다/(중략)/우리는 이런데 마로 사노’
1968년 경북 안동에 살던 한 어린이가 쓴 동시다. 산업화와 도시화 때문에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순수한 동심으로 신세를 한탄하는 어린이조차 농촌에 없다는 사실이다.지금 농촌은 저출생 고령화에 대도시 인구집중까지 겹쳐 ‘소멸’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현 추세대로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해지면 의료, 육아, 교육, 교통 등의 공공기능 축소가 불가피하고 결국 공동체 존립마저 어려워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169개 면 중에서 병·의원이 아예 없는 곳이 무려 400개가 넘는다. 150개 면은 밥을 사 먹을 식당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교도소라도 유치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겠는가.
농촌 공동화(空洞化)는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숙제다. 정부가 지난 16년간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촌 공동화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물학 박사인 에드워드 윌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녹색갈증(Biophilia)’ 키워드를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제시했다. 녹색갈증이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녹색의 자연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최근 치유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바로 녹색갈증을 기반으로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분야에 심취해 있는 한 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한국의 자연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힐링자원이자 치유자원이다. 한국의 치유자원에 첨단 과학기술과 문화적 경쟁력을 융복합하면 국제적 우위를 갖는 치유산업이 된다. 치유산업은 농촌과 지방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를 잘 발전시키면 농촌소멸, 지방소멸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오래전부터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는 치유산업을 농업에 한정시켜 치유농업, 돌봄농업(Care Farm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돌보며 자연 속에서 산책과 명상을 즐긴다. 녹색갈증 해소를 통해 치유산업이 발전하고 농촌에 사람이 모인다.
지금 설 귀성이 한창이다. 고향에 가면 낯익은 돌담과 들녘으로 통하는 작은 사립문, 그리고 천렵과 자맥질로 하루가 짧았던 개울이 우리를 반긴다. 이들과 만나면 타는 목마름이 해소되듯이 녹색갈증이 풀릴 것이다. 혹여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우리는 도시에서 마로 사노. 이런 촌에서 살지. 콘크리트 더미와 매연 먼지가 나는 싫다”라고 말하면 우리 농촌도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