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I 골든타임 놓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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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글로벌마켓부장“중국은 경쟁자이고 다른 나라도 경쟁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공지능(AI)을 미국이 하는 것이다. 비상사태 선언을 통해 많은 도움을 주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틀째인 지난 21일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이는 미국의 AI 패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트럼프, 비상사태까지 선언
1년간 1000억달러, 향후 4년간 총 5000억달러(약 720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스타게이트는 미국에서 추진 중인 수많은 AI 프로젝트 중 하나다. 메타는 24일 “올해는 AI에 있어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며 전년보다 70% 늘린 600억~65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초 800억달러(2025 회계연도)라는 천문학적 투자 규모를 발표했고, 아마존과 알파벳 등 다른 빅테크도 각각 수백억달러를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은 미국에서 앞으로 5년 동안 1조달러 이상이 데이터센터에 투자될 것으로 추산한다.AI는 모든 것을 혁신할 잠재력을 지닌 파괴적 기술이다. 물리 생물 화학 의학 등 학문뿐 아니라 제조업 금융업 농업까지 각종 산업에서 좋은 AI 인프라를 갖춘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차이는 극명하게 벌어질 것이다. 앞선 AI의 지원을 받으면 연구개발(R&D)이 빨라지고 정확해지며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AI에서 앞서면 사이버 보안, 국방 기술, 정보 수집 등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우리 정책은 경제적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해 AI 우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2023년 AI 기술이 미칠 수 있는 위험을 막겠다며 제정한 AI 규제마저 폐기했다. 규제보다 AI 기술 선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흔들리는 IT 강국
AI는 AI 칩(GPU)을 확보한다고 구현되는 게 아니다. 충분한 전력이 있어야 한다. 오픈AI의 챗GPT 검색은 구글 검색에 비해 약 10배의 전력을 소모한다. 이미지 생성에는 50배, 영상엔 1만 배의 전력이 필요하다. 아마존 등이 폐쇄된 원자력발전소까지 되살리겠다고 나선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각종 규제를 우회해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한국은 AI 인프라 구축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국토가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전력망을 책임지는 한국전력은 200조원이 넘는 총부채로 인해 대형 투자를 하기 어렵다. 원전 건설은 환경 규제와 시민단체 반대로 난항을 겪어 왔다. 이외에도 수많은 규제로 한국은 이미 뒤처지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처해 왔지만, 데이터센터는 153개(2024년)에 그친다. 미국(5381개), 독일(521개), 영국(514개), 중국(449개), 일본(251개) 등 주요국에 뒤질 뿐 아니라 호주(307개), 러시아(297개), 이탈리아(170개)에도 밀린다. 여기에 정치적 리더십 공백 상태까지 장기화하고 있다. 멀찌감치 앞선 미국은 ‘승자 독식’을 위해 대통령까지 뛰고 있지만 한국에선 누가 AI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