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기충천 산행] 기운 샘솟는다는 강화 '마니산'

바위 딛고 올라서면 서해가 한눈에 보이는 '생기처'
마니산 등선에서 내려다보이는 서해
마니산 등선에서 내려다보이는 서해
10월 3일 개천절마다 참성단에서 단군조선 건국을 기리는 행사를 보고자란 우리 민족에게 이보다 익숙한 산은 없다. 바로 인천 강화 마니산이다. 고도 472.1m로 등산 고수들에게 도전의 열의를 일으키는 높이도 아니고 접근이 쉬워 주말 여유로운 산행처로 적당한 것도 아닌데 마니산은 산 좋아하는 이들에게 명산 중 명산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니산은 기 돋우는 명산으로 유명하다. 전영우 국민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마니산은 ‘기(氣)를 폭포수처럼 분출하는 생기처(生氣處)’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생기처'로 불리는 곳은 여럿 있다. 경북 김천의 오백년 고찰 직지사와 태백산 문수봉, 오대산 적멸보궁 등이다. 개천절 행사가 괜히 마니산을 터로 삼은 것이 아니다.기운 좋다 하니 무속인들이 의식을 지내러 자주 찾고 안전사고도 빈번해 2019년 참성단 통행을 금지하다 2023년 다시 일반에 개방했다. 새해를 맞아 첫 등산지로 찾은 참성단 계단 앞에서 먼저 둘러보고 내려오던 등산객이 "올라가면 가슴 뻥 뚫립니다"며 모르는 이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싶어질 정도로 산 기운이 호탕하다.

바위산의 위엄과 바다를 품은 장관

서울역을 중심으로 마니산관광단지 입구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 시간은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내린 뒤 지역 버스 71번을 타고 초지대교를 건너면 관광단지입구까지 간다. 입구에서 마주한 마니산은 하늘을 향해 다소곳하게 두 손을 뻗은 모양새다.

마니산은 입장료를 받는다. 성인은 2000원이다. 초입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있어 요깃거리나 간단한 등산용품을 판다. 날이 좀 풀려 특별한 장비 없이 떠난 산행인데 매표소 직원이 신발에 끼우는 아이젠이 없으면 입산할 수 없다는 말에 편의점에서 아이젠 하나를 장만했다.마니산 등산로 입구는 총 4개다. 함허동천이나 정수사에서 시작하는 바위 코스와 관광단지 입구에서 만나는 단군로와 가파르지만,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천사계단로 등이다. 초보는 좀 돌아가더라도 비교적 완만한 단군로가 적당하다. 오르는 길에 서해 풍경을 내내 볼 수 있는 산행이 지루하지도 않다.
오르는 중에 300여 개의 계단이 나온다
초입은 완만하고 흙길이라 걷기도 좋다
마니산 산행길
마니산의 본디 이름은 마리산, 두악산이었다. 산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마니산과 나란히 고려산(436m), 혈구산(460m), 진강산(443m) 등 산 네 개가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 마니산이다. 마니산이라는 이름은 <동국여지승람 강화도호부>에 처음 등장한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에는 마니산이 백두산과 한라산의 딱 중간이고 그래서 '한반도의 배꼽 지점'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강화도는 팔만대장경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고려 때 조정이 몽골을 피해 강화로 수도를 옮기면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니산과는 거리가 있지만 강화군 석모도에는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도량(관음보살을 두고 기도하는 곳)인 보문사가 있다. 서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바위의 마애관음좌상은 신비를 자아낸다. 동해의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와 남해를 마주한 경남 남해 보리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좋은 기운 받겠다는 마음으로 한참을 오르다 보면 멀리서 참성단이 보이다. 흙길과 바위가 드문드문 이어져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으나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다리 좀 아픈 것이 대수가 아니다. 왼쪽으로 영종도와 주변의 야트막한 섬들이 점점이 떠 있고 너른 평야와 비늘 같은 빛을 반사하는 서해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시름을 잊게 한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마니산 등선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은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한다고 하고 음과 양의 만남이라는 해석도 있다. 옆 돌 틈에 오래 뿌리를 내린 소사나무의 생명력도 시선을 뺏는다. 참성단 봉우리에서 내려와 마니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10여 분 걸린다. 정상이 뭐라고 그 힘든 수고를 견디며 오르나 싶지만 일단 어느 산이고 정상에 발을 딛고 보면, 산의 기운 덕분이기도 하겠으나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과정의 인내가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참성단의 소사나무
참성단에서 보이는 마니산 정상
마니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들
하행은 계단 길을 따라 이어졌다. 눈이 얼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라 온몸에 힘을 바짝 주며 걸어야 했다. 길이 가팔라 오를 때 두어시간 걸렸다면 내려가는 데는 한 시간 남짓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한참 내딛는 한 발 한 발만 신경 쓰다 보면 기독교 마리산 기도원이 나오고 이때부터는 잘 닦인 도로가 관광단지 입구까지 이어진다.
마리산 기도원
등산이 목적이었던 터라 인근 사찰인 전등사나 정수사는 들러볼 겨를 없이 입구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서울로 향했다. 여유 된다면 석모도 보문사도 들러보고 싶지만, 다음으로 기회를 미뤘다. 산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일 년에 세 번 마니산을 찾으면 소원 하나는 꼭 이뤄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핑계 삼아 다시 마니산을 찾아 보문사도 둘러보면 되려니 싶다. 운을 밝힌다는 개운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틈틈이 산을 찾는 일이 마음 다스리는 데는 그래도 제법 효과를 발휘한다.

이선정 한경매거진 기자 sj_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