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때도 끝까지 지켰다"…기재부 '비밀의 방' 정체가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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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모습. 뉴스1](https://img.hankyung.com/photo/202501/01.39343827.1.jpg)
기재부 직원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이 방의 이름은 ‘딜링룸’. 금융 기관에선 외환 딜러가 외환 매도·매수 주문 같은 업무를 하는 공간이지만, 기재부에선 다소 다르다. 외환 당국으로서 불공정·투기 거래를 막고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작년 7월 시행된 ‘외환시장 구조개선’으로 외환시장 마감 시간이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연장되면서 딜링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6평(약 20㎡) 남짓한 이 공간엔 모니터만 18개가 설치돼있다. 각 화면엔 실시간 원·달러 환율과 로이터통신, 블룸버그 등 주요 매체의 속보가 나타난다. 딜링룸엔 외환 당국의 한 축인 한국은행과의 핫라인도 구축돼있다.
취재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곳을 담당하는 이들은 김희재 기재부 외화자금과장과 이태윤 사무관(5급 공채 57회), 변재만 사무관(5급 공채 60회), 김시현 주무관(7급 공채 62기) 등 네 명이다. 이 중 김희재 과장과 이태윤 사무관의 인터뷰를 29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하 김=김희재 과장, 이=이태윤 사무관)
"연평도 대피령이 내려졌다" 소식에 환율 출렁이기도
▲이토록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공간도 많지 않은 것 같다.김=작년 7월 외환시장 구조 개선을 실시한 이후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을 해왔는데, 양해를 구하며 거절해야 했다. 민간 금융기관과 달리 외환 당국의 딜링룸이다 보니 ‘스무딩 오퍼레이션(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변할 때 이를 둔화시키기 위해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는 것)’처럼 외환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오간다. 민감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보안 차원에서 출입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딜링룸은 어떻게 이뤄져 있나.
이=근무자 자리는 총 세 개로, 각 근무자가 5~6개의 모니터를 다룬다. 주요 언론 매체의 속보나 시장 관련 기사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나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동향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은행과의 핫라인은 물론 기타 시장 주요 참여자들과의 소통 채널도 구축돼있다.
▲야간 운영 때문에 근무 시스템이 복잡해졌을텐데.
김=작년 7월 ‘외환시장 구조개선’ 실시 이후부터 주간 시간대엔 두 명, 야간 시간에는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딜링룸 근무자는 이태윤 사무관과 변재만 사무관, 김시현 주무관 등 세 명이다. 근무자 중 ‘선임’인 이태윤 사무관은 주간 시간대에 근무하고, 나머지 변재만 사무관과 김시현 주무관이 주간과 야간 근무를 2주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이=주간 근무자는 보통 오전 8시쯤 출근해서 오후 6시쯤 퇴근한다. 야간 근무자는 오후 3~4시쯤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딜링룸을 지킨다. 주요 시장의 장 마감을 보고 나서 오전 3시께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근무자들은 자택에서도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놨다.▲계속 돌아가는 시장을 보느라 밥 먹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아무래도 도시락을 시켜 먹는 경우가 많다.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까. 경우에 따라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도 한다. 시장이 좀 안정돼있다 싶으면 각자 약속 자리를 가기도 하는데, 다른 직원들보다 이동에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빠르게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웬만하면 멀리 안 가려고 한다.
▲딜링룸에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이=작년 1월 ‘연평도에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이 속보로 전해졌던 적이 있다. 실제 상황은 아니었고, 군사훈련 차원에서 내려진 대피령이었다. 하지만 당시 헤드라인만 보고 시장 참가자들이 반응하면서 순간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3~4원 급등했다. 나중에 합동참모본부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시장이 안정을 찾았지만, 북한 이슈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큰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청사 비워라' 소문에도 "시장이 열려있으니 자리 지켜야 한다"
이=작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피격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국 시각으로 작년 7월 14일에 벌어졌는데, 그날이 일요일이다 보니 한국은 외환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비트코인 시장은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후보가 피격당한 다음 곧바로 주먹을 쥐고 일어선 모습이 뉴스를 타고 퍼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급등했다.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당선에 가까워졌다는 시장의 반응이었던 걸로 해석된다. 우리는 다음날 원·달러 환율도 상승하리라 예측하고 대응에 나섰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때는 어떻게 대처했나.
김=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보니 우왕좌왕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청사를 비워야 한다’라거나 ‘중앙동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데 당시 야간 근무자였던 변재만 사무관이 “(외환)시장이 열려있으니 나는 자리를 지키러 가야 한다”며 딜링룸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
이=김희재 과장님은 곧바로 중앙동으로 출근했다. 워낙 상황이 중차대한 만큼 유선으로 소통하기보다 직접 사무실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당시에 자택에 있던 나머지 근무자도 계엄 선포에 따른 환율 움직임을 확인하는 등 시장을 모니터링했다.
▲현실적으로 야간 근무를 언제까지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영국 런던에 근무자를 한명 보내기로 하고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아마 팀장급(서기관)이 갈 것으로 보인다.▲외환시장 구조개선 반년이 넘었는데 평가하자면.
이=딜링룸 업무를 하다보면 원·달러 환율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새벽 시간대와 휴일 뉴스에도 빠르게 반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외환딜러와 수출입업체, 금융회사, 개인투자자 등 한국의 외환 시장 참여자의 폭이 넓고 수준도 상당히 높다는 의미라고 본다. 당국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외환시장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 특히 올 한해는 시장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때 아닌가.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