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쇼크' 韓증시에 악재일까 호재일까…개미 '초긴장'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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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中 딥시크 습격'
"반도체·AI인프라株 단기 하락 불가피"
"가격 비싸진 관련주 조정 받을 수도"
"장기적으로 AI 생태계 확장에는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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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그동안 인공지능(AI) 프리미엄으로 고평가된 반도체·전력주(株)의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과 개방성이 핵심인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부상으로 AI 생태계 확장이 예상돼 주가 급락 시 저가 매수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30일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딥시크가 최신형 칩을 사용하지 않고 저비용으로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지난 28일 엔비디아 주가는 16.97% 폭락하면서 시가총액이 약 846조원 증발했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이튿날인 29일에는 반발 매수세 유입에 주가가 다시 8.82% 급등하면서 시총 3조달러대를 회복했다. 엔비디아 주가 롤러코스터에 브로드컴, AMD, 퀄컴, TSMC 주가도 덩달아 출렁였다.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장중 9% 넘게 급락했다가 1%대 상승으로 겨우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새벽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동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AI칩 수출 규제 강화 검토, 빅테크 실적 발표 등에 엔비디아 주가가 4.1% 또 급락하면서 시총 3조달러를 겨우 지켜냈다.일본 증시에서도 '딥시크발(發)' 충격 이후 어드반테스트, 소프트뱅크그룹, 미쓰비시중공업그룹, 소니그룹 등의 주가가 출렁였다.
이 때문에 설 연휴와 임시공휴일로 이번주 나흘간 휴장한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딥시크 충격파가 어디까지 갈지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휴장 이후 경계심리 발동에 일단 단기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더 좋은 중국 모델 출현이 엔비디아칩 같은 고가 모델 수요를 위축시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국내 관련주들도 단기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일로 미·중 간 기술 경쟁과 미국의 중국 견제 조치가 더 거세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이웅찬 iM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선 반도체주뿐만 아니라 전력주, AI 인프라주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는 애초에 너무 기대가 높았던 데다 비싸기도 비쌌던 터라 하락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생성형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는 그동안 고성능·고효율을 강조하며 고가 제품을 판매해 왔다. 그러나 딥시크가 최근 선보인 '추론 AI' 모델 '딥시크-R1'은 생성형 AI의 선두주자인 챗GPT 등과 비슷한 성능을 선보이면서도 개발 비용이 557만6000달러(약 78억8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소식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엔비디아가 타격을 입을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 역시 매출 감소 등의 위기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내에서 엔비디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주식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HBM 5세대인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품질테스트를 진행 중이다.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제부터는 대규모 투자가 AI 성장에 필수적이란 구도가 깨졌기 때문에 빅테크 업체들이 무조건 최신 GPU를 확보하려는 경쟁보다 효율적 투자 방법을 모색하려고 할 것"이라며 "엔비디아에 고용량 HBM을 납품하며 AI에 대응해온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구형 칩인 'H800'만으로 AI를 개발했다고 밝혔는데 딥시크의 모기업이 엔비디아 첨단 칩인 'A100'을 1만개가량 보유하고 있고 딥시크 AI의 초기모델이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챗GPT 최신 버전을 일부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는 딥시크의 R1이 이를 기반으로 나온 후속 모델이기 때문에 A100 구입 비용도 개발비에 포함돼야 한다는 게 미 테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딥시크는 엔비디아로부터 'H800'을 구매한 게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에 대여해 사용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R1'의 전체 훈련에는 278만 GPU시간이 소요됐고 H800 GPU 시간당 대여 비용 2달러로 계산했기 때문에 훈련 비용이 557만달러라는 분석이 나온 것"이라며 "다만 공식 훈련 비용에는 아키텍처(구조 설계), 알고리즘, 데이터 관련 사전 연구와 소거 실험 비용은 제외됐다"고 분석했다.이어 "딥시크 모델로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가 과도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동안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와 비용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시키겠지만 시장의 오해로 오는 하락은 좋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