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내면의 소리가 들리니…'틱틱붐'·'스윙 데이즈'

30세 예술가의 고뇌 그린 '틱틱붐'
독립운동가 택한 50세 사업가 '스윙데이즈'
뮤지컬 '틱틱붐'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틱틱붐'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곡가를 꿈꾸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한 30세의 조나단 라슨. 성공한 사업가임에도 목숨을 내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50세의 유일한 박사.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 '틱틱붐'과 '스윙데이즈_암호명 A'가 캐릭터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내며 호평 속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틱틱붐'은 1990년 서른 살이 된 조나단 라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는 주인공 존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곡가를 꿈꾸는 청년이다. 한때는 심장을 뛰게 했던 '유망한 젊은 작곡가'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부끄러운 꼬리표가 되어 버렸다. 현실은 그에게 '가난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늘 걸려 오는 부모님의 전화도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다.틱…틱… 커지는 불안감과 함께 언제부턴가 귓가에 날카로운 시계의 초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존의 혼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 세상에서 나만 불행한 것 같다.

시작부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고통받는 존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가로·세로·높이 6m 이상의 커다란 정글짐을 중심으로 미끄럼틀, 그네 등으로 꾸며진 무대는 존의 순수함, 꿈을 향한 열망과 함께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리숙함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정글짐이 회전하면서 존이 아르바이트하는 다이너, 친구 마이클의 집과 회사 등의 공간이 입체적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존에 투영된 대로 작곡가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던 조나단 라슨은 자기 경험을 담은 '틱틱붐'을 1990년 워크숍을 통해 1인 모놀로그로 선보였다. 이후 1인극이 3인극으로 발전했고, 이번 '틱틱붐'은 5인의 앙상블까지 추가해 총 8인극으로 완성됐다. 드라마, 음악적으로 더 입체감을 준 것인데, 기존 '틱틱붐'이 지닌 매력이자 강점은 훼손하지 않았다. 관객에게 말 걸듯 다가가며 방대한 양의 대사를 소화하는 존은 그 자체로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조나단 라슨은 뮤지컬 '렌트'의 원작자다. '렌트'가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과 연대를 그렸다면, '틱틱붐'은 젊은 예술가의 내면을 치밀하게 표현해냈다. 공통점이 있다면 흔들리지만 뭉근한 따뜻한 빛을 내는 청춘의 에너지다. 두려움의 한 가운데에 놓인 현재 상황, 그런데도 나아가는 결단과 도전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나의 가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존의 깨우침과 함께 '틱틱' 그를 옭아매던 소리는 '붐!'하고 터진다. 노란 공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강렬한 해방감을 주는 장면은 놓쳐선 안 된다. 오는 3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신한카드아티움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A' /사진=연합뉴스
냅코프로젝트. 일제 치하였던 1945년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OSS(미국 CIA 전신)가 비밀리에 준비한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인 19명이 참여했다. 한국 출신 이민자 중에서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을 선발해 비밀리에 침투시키려는 이 작전에는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있었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인 그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바로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독립운동가로서의 결정적인 선택을 한 유일한 박사의 일대기를 유일형이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입시켰다. 비장미를 덜어낸 것이 일반적인 독립운동 소재 작품과의 차별점이다. 유일형을 무조건적인 영웅으로 그리기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살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유일형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죽은 조선독립군 베로니카의 혼령이 따라다니는 연출을 가미하기도 했다.'국뽕'을 덜어내니 작품성에 더 주목하게 된다. 유일형의 내면에 깊숙이 공감하게 되는 건 중반부를 지나서야 가능해진다. 극 초반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이 듬성듬성해 유일형의 정의감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조선독립군 베로니카, 친구이자 일본군 중좌인 야스오, 아내인 호메리 여사와의 만남,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까지 다양한 관계성을 다 다루려다 보니 빠른 전개만큼 공감대를 쌓기가 어렵다.

하지만 1막 말미에 이르러 집중력이 한 데 모인다. 유일형이 자신이 만든 마약성 진통제가 일본군 조종사들이 폭탄을 장착한 항공기를 몰고 연합군 함선에 직접 충돌하는 전술인 '카미카제 작전'에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은 숨 막히는 연출로 설득력을 확 끌어올린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소년병들, 그들을 잡으려는 유일형, 극도의 혼란에 빠진 유일형의 내면까지 여러 시각적 요소들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넘버 '멈출 수 없어'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가장 박수를 쳐야 할 부분은 음악이다. 작곡을 맡은 제이슨 하울랜드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상을 받고, 토니상 후보에도 오른 브로드웨이 스타 작곡가다. 국내에서도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웃는 남자' 편곡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자칫 늘어지는 서사도 음악이 상당한 힘을 발휘해 끌고 나간다. 스윙까지 다채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극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모든 넘버가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하다. 멜로디가 한국인 정서에도 맞게 친숙해 제이슨 하울랜드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공연은 오는 9일까지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