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AI 어쩌나" 국내 증시도 촉각…SK하이닉스 '초긴장'

엔비디아 3일간 12%↓…투심 위축
AI 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 확산
韓 반도체주 향배는…삼성전자·SK하이닉스 영향 다를 듯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내놓은 AI 모델 영향으로 미국 주요 기술주들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긴 설 연휴 이후 오는 31일 개장할 국내 증시 영향에도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휴장 기간 동안 나온 ‘딥시크 충격’을 이날부터 소화할 예정이라서다.

엔비디아 하락세 지속…변동폭은 줄어

29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서 엔비디아는 4.10% 내린 123.7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27일부터 이날까지 12.84% 내렸다. 엔비디아는 딥시크에 대한 시장 반응이 가시화한 지난 27일 이후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변동폭은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7일엔 16.97% 급락했지만 이튿날엔 8.93% 올랐고, 이날은 4.10% 하락했다. 엔비디아에 이어 미국 반도체 시총 2위 기업인 브로드컴의 주가는 0.49% 하락한 206.35달러에 장마감했다. 이 종목은 지난 27일에 17.40% 급락했지만 이후 이틀간은 약 2%포인트 가량 하락폭을 만회했다.

같은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0.23% 올라 4918.10에 장을 마쳤다. 지난 27일 기록(4854.46)을 조금 윗돈다. 이 지수도 지난 이틀간 급격한 변동폭은 잦아든 모양새다.

'고성능 AI, 우리는 싸게 만들었다' 中 발표에 투심 악화

주요 증시에서 딥시크 충격은 지난 27일 가시화했다. 딥시크가 지난 20일 공개한 자체 개발 추론형 AI 언어모델 ‘R1’과 R1 기반 챗봇 앱을 두고 시장 일각에서 AI 인프라 투자 향배를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급부상한 영향이다. 딥시크는 R1 기반 서비스와 함께 이 모델의 개발 논문 격인 기술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른 딥시크의 R1은 AIME, MATH-500, SWE-벤치 등 정보기술(IT) 업계 주요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챗GPT의 GPT4 o1보다 나은 성능을 보였다. 챗GPT는 시장에 공개된 대규모 AI 서비스로는 자타공인 ‘1타’다.

엔비디아 등의 급락세는 딥시크가 이같은 성능의 AI 서비스를 저성능 반도체칩만 가지고도 만들 수 있다는 예상이 퍼진 까닭에서다. 그간 빅테크를 비롯한 기술기업들은 반도체칩을 비롯한 하드웨어 투자를 늘릴 수록 더 높은 성능의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대원칙을 두고 AI 개발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왔다.

하지만 R1의 등장으로 규모(스케일링)의 법칙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사례가 나온다면 엔비디아 등의 반도체 칩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일각의 우려다. 엔비디아는 최근 수년간 기성 그래픽카드(GPU)와 AI 연산에 특화한 AI 가속기 칩 매출 기대감을 타고 주가가 올랐다. R1은 대형 AI 모델에서 핵심적인 ‘액기스’ 지식을 추출해 소형 AI 모델로 전달하도록 하는 증류 방식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이를 통하면 보다 적은 연산 자원을 가지고도 AI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AI 서비스를 위한 반도체나 전력이 그만큼 덜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엔비디아 반도체 수요 줄어들까

그러나 IT업계와 금투업계에선 딥시크의 등장으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IT업계에선 딥시크가 저성능 칩만 사용했다는 주장 자체를 두고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AI 학습용 데이터 기업인 미국 스케일AI의 알렉산더 왕 최고경영자(CEO)는 “딥시크가 미국 제재 때문에 밝히진 않았을 뿐, 엔비디아 H100을 5만개 넘게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칩 무역 제재를 걸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딥티크가 저성능칩만 썼다고 했다는 얘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엑스(옛 트위터)에서 왕 CEO의 주장에 ‘물론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딥시크 최신 모델의 ‘가성비’도 아직은 추정치에 가깝다. 딥시크는 R1 모델에 어떤 반도체 칩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훈련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앞서 공개한 모델 V3에 대한 기술보고서에서 이 모델을 훈련할 때 엔비디아의 H800칩을 2048장 썼다고 설명했다. 훈련엔 2억7800만 GPU시간이 들었다. 한 시간에 2달러 대여비를 썼다고 가정했을 때 여기 들어간 돈이 577만6000달러(약 83억원)라는 게 딥시크의 주장이다.

H80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든 중국 전용 제품이다. H800은 AI 연산 속도가 H100에 비해 약 30% 떨어지지만 서버를 포함한 가격이 H100의 절반 수준에 가깝다.

딥시크가 가성비를 주장한 V3의 일부 요소가 이미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다른 AI 모델을 기반으로 했을 공산이 크다는 점도 변수다. V3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V3은 추론 능력을 R1 시리즈 모델에서 증류해 개발했다. '선생님 모델' R1의 핵심적인 생각 방식을 V3가 배운 구조인 만큼 R1에 이미 들어간 개발 비용 덕에 V3의 개발 비용이 줄어들었을 공산이 크다. 딥시크는 V3 개발 비용을 훈련 단계에 한정해서만 공개했을 뿐, AI 모델 개발에 필수적인 데이터 취득·정제 비용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인건비도 고려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투심 단기 악화 가능성…삼성전자는 '새옹지마' 전망

금투업계에선 딥시크의 ‘가성비A’ 개발이 사실일 경우 국내 양대 반도체주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단기적으로 투자심리가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H100 등의 핵심 부품이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HBM에서 올린 매출은 5조8510억원으로 전체 D램 매출의 40% 수준이었다. 대부분 엔비디아에 제품을 팔아 거둔 결과다. 고성능 반도체칩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시장 예상이 퍼지면 SK하이닉스 주가는 일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 주가가 입을 영향은 보다 제한적이라는 게 금투업계의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납품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3E보다는 한 단계 낮다. HBM3E 제품은 엔비디아 공급선을 뚫기 위해 품질 테스트를 벌이고 있다. 딥시크가 활용했다고 주장하는 H800에는 HBM3E가 아니라 HBM3가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수요 타격 전망엔 선을 긋는 분위기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연산 효율성이 개선됐다고해서 HBM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룡’ 기업들이 같은 투자액으로 더 큰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얘기일 뿐, 지금처럼 중요한 기술변혁기에 칩 투자를 줄이는 만용을 부릴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딥시크가 공개한 R1도, 미국 기업들이 공개한 각종 모델도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전부가 아닐 것”이라며 “각자 ‘비장의 카드’는 숨겨둔 채로 AI 경쟁이 격화할 전망이라 이번 발표로 HBM 수요가 꺾일 것이라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R1 발표로 미국 AI 수퍼 사이클이 가속화하면 했지, 투자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발표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ASIC 대장인 브로드컴, TSMC 등 코어기업의 업계 내 경쟁력이나 해자(독점적 경쟁력)를 건드리는 이슈가 아니다”라며 “최근 급락은 시장의 오해와 과장된 보도에서 오는 매수 기회”라고 분석했다. 그는 “AI 수퍼사이클의 파동이 진폭을 키우겠지만 AI 코어 인프라기업의 주가 우상향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소 AI소프트웨어 기업엔 기회 될 수도

반면 기성 AI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엔 중장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존 기업의 경쟁력 해자를 뚫어버릴 수 있어서다. 딥시크는 R1을 완전개방형인 MIT 라이선스로 공개했다. 사용자가 제한없이 수정·배포·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라이센스다. R1 모델을 누구나 가져다 상업 서비스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은 AI 서비스에 도전하기가 더 쉬워진 셈이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딥시크가 낸 논문은 증류된 모델에 강화학습을 적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며 “대형 모델을 훈련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 연구자나 기업도 소형 모델을 통해 고성능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한국(기업)에도 적용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확장 가능성은 변수다. 딥시크가 R1을 MIT 라이선스로 공개했다는 것은 이른바 ‘딥시크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중국 모델인 만큼 중국 정부나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는 적극 활용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딥시크 생태계’로 선뜻 뛰어들 기업이 그보다 적을 수 있다는 게 IT업계의 중론이다.

한 기관 연구원은 “기업이나 기관이 AI 서비스를 선택할 땐 비용만이 아니라 신뢰도와 보안, 평판 등을 두루 고려해 결정한다”며 “딥시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이고, 일각에선 보안 우려도 제기되는 만큼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선뜻 R1 기반 서비스를 채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생태계 확장 ‘호재’ 중론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로 주요 기업간 AI 경쟁이 더욱 격화해 반도체칩을 비롯한 AI 인프라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반도체칩 확보에 열을 올리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할 공산이 더 크다는 전망이다.

샘 울트먼 오픈AI CEO는 최근 R1에 대해 “가격 대비 성능이 인상적인 모델”이라며 “물론 오픈AI는 훨씬 더 나은 모델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경쟁자가 나와서 활력이 솟는다”고도 했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딥시크가 AI 생태계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올해는 중국 AI 연구소들이 미국을 얼마나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지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이 가장 중국을 견제하는 분야인 AI에서 중국이 강수를 낸 것”이라며 “미국은 격차를 더 벌려야 하는 상황일 것이고, 이에 따라 AI 투자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의 실적 발표와 설비투자(CAPEX) 관련 코멘트가 투자 심리 향배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AI 투자를 견인하고 있는 클라우드의 의지가 꺾이기 전까진 사이클의 끝이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