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軍간부 사칭 사기'는 캄보디아 韓조직 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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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까지 마련해 범행
인근 부대 간부인척 식당에 전화
수백인분 음식·물품 대량 주문
이후 대리구매 요청해 대금 가로채
프놈펜 '범죄단지'에 거점 마련
단순한 노쇼 아닌 '전문가 소행'
경찰 "피해 복구 사실상 어렵다"

○‘軍 사칭 사기’ 두 달 새 3배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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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된 사기 수법은 대동소이하다. 우선 사기꾼이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인근 군부대 소속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많게는 수백 명이 먹을 음식 등을 대량으로 주문한다. 이 사기꾼은 얼마 뒤 다시 전화를 걸어 “부대에 급한 사정이 생겼으니 전투식량, 식자재 등을 먼저 대신 구매해 달라”며 “결제는 주문한 물품을 찾으러 갈 때 함께하겠다”고 부탁한다. 자영업자가 이에 응해 돈을 제3의 업체에 송금하면 사기범은 잠적하는 방식이다.
이런 범행은 작년 하반기부터 전국으로 확산했다. 강원 부산 인천 울산 충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피해가 커지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장난전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홈페이지에 주의하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그러나 경찰은 이번 사기가 캄보디아 등 해외에 거점을 둔 기업형 범죄조직이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자금 세탁, 현금 수거 등 하위 조직원은 국내에 있지만 범행을 기획한 총책은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일종의 피싱 범죄로 현지 경찰과 공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범행
로맨스 스캠, 주식리딩방 등 캄보디아에 둥지를 튼 범죄조직들은 상세한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범행에 사용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확보한 ‘군 간부 사칭 사기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혼자 일하는지, 몇 시에 문을 열고 몇 시에 마감하는지 등을 물어보며 친밀감을 쌓아라” “상대가 망설이면 말을 끊어가며 단호하고 간결하게 말하라” 등 마치 영화 대본같은 지침이 나와 있다.범죄조직들은 큰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의 주문 전화를 자영업자가 거절하기 힘들 것이란 심리를 노렸다. 무엇보다 추가 요구를 거절하면 기존 대량 주문까지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이용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최대 수천만원까지 송금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인천 서부경찰서엔 ‘지역 군부대 간부를 사칭한 남성의 사기로 1680만원 피해를 봤다’는 철물점 업주의 신고가 접수됐다. 울산에선 한 점주가 2520만원의 피해를 봤다.캄보디아 교민들에 따르면 이들 시나리오는 프놈펜, 시아누크빌 등 주요 도시 ‘범죄단지’에 둥지를 튼 조직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처럼 집합건물 단지에 한국인 사기단체가 머물고 있어 범죄단지로 불린다. 경찰은 이들 범죄단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국인이 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범행을 저지른 조직이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소상공인 피해 복구는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총책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지 사정상 빠른 검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