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편관세 시동…"매월 2.5% 부과보다 더 세게"

관세 강경파 손 들어주나

베센트 장관, 점진적 보편관세에
트럼프 "훨씬 높은 관세 매겨야"

美상무 후보자 "동맹 우리 이용
반도체 보조금 지급 약속 못해"
"관세 인플레 주장은 난센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보편관세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제안한 점진적 보편관세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훨씬 더” 높은 관세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도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난센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계획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높은 보편관세’에 무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베센트 장관이 2.5%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정률 인상되는 보편관세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에 적응할 시간을 주고, 각국에 미국 정부와 협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최고 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유세 기간 언급한 20%가 거론됐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온 후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2.5%보다 훨씬 더 높은 관세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베센트 장관의 구상이 지지를 받고 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릿속에 어느 정도로 (관세를 부과)할지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그 수준은 미국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관세 강경파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관세 부과 대상 산업으로 의약품, 반도체, 철강을 꼽았다. 그는 27일 공화당 연방하원 콘퍼런스 연설에서 “(집권 1기 때) 대규모 철강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면 미국에 철강 공장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세탁기, 건조기 등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더라면 오하이오에 있는 (월풀 등) 회사는 모두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세탁기를 콕 집어 관세 부과를 통해 지역 제조업을 살린 사례로 소개했다.

○“韓·日 우리를 이용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2.5%보다 훨씬 높은 보편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발언해 관세 강경파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해 세계 각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세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러트닉 후보자는 29일 청문회에서 “(선별 관세보다) 일괄 관세를 선호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관세’ 주장을 지지했다.

그는 관세가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인도와 중국은 관세율이 높지만 물가 상승률은 그렇지 않다”며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러트닉 후보자는 앞서 재무장관 자리를 놓고 베센트 장관과 경쟁하면서 ‘베센트는 관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투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러트닉 후보자는 이날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동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중국 외 동맹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적정하냐’는 질문에 “중국에 대한 관세가 가장 높아야 하지만 미국인이 유럽에서 미국 차를 팔 수 없다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위대한 동맹은 우리의 선량함에서 이득을 취했다”며 “일본의 철강, 한국의 가전은 우리를 그저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약속 안 해

러트닉 후보자는 ‘조 바이든 정부가 한국과 대만 등의 반도체 기업에 약속한 반도체법(칩스법) 보조금 지급을 이행하겠느냐’는 질문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관련 법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회복하기 위한 훌륭한 착수금”이라면서도 이 보조금의 지급 계약을 이행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리스용 전기차에 제공하는 세액공제에 관해서는 “끝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현대자동차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러트닉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다음달 1일 시행할 예정인 멕시코와 캐나다 대상 관세에 관해 ‘협상 전술’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그는 “25% 관세는 국경에서 발생하는 이민과 펜타닐 문제에 국한된 단기적 전술”이라며 “두 나라가 (이민과 펜타닐 유입 차단을) 실행만 하면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캐나다산 원유가 미국에 수입될 것이란 기대가 커져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한때 배럴당 73달러 아래로 1.6%가량 떨어졌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