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려아연 '순환출자 꼼수' 논란…결국 공정위 손에

MBK-영풍 신고서 접수

31일 오전 공정위에 상호출자 금지 꼼수 관련 신고서 제출
공정위 "조사 통해 신고 내용 면밀하게 분석해 대응할 것"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을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로 경영권을 방어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신고서 내용을 토대로 최 회장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에 대한 탈법행위 조항을 다루는 첫 사례인 만큼 조사 결과가 재계 전반에 끼칠 파급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날 오전 MBK파트너스가 최 회장을 상대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제기한 신고서를 접수했다. 이 신고서엔 최 회장 측이 공정거래법 제21조(상호출자의 금지), 제36조 제1항(기업집단 규제 회피 금지), 시행령 제42조 제4호(상호출자 금지에 대한 탈법행위 규정) 등을 위반했다며 엄정한 조사와 조치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고서 자문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았다.

MBK 측은 신고를 통해 "2014년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제 도입 이후 최초로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한 사례"라며 "이런 방식의 부당한 확장이 허용된다면 공정위의 기업집단 규제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주목도가 높은 사안인 만큼 접수된 신고서 내용과 현행법을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신속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순환출자 규제 비켜간 '해외 계열사' 꼼수

MBK는 최 회장이 국내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 대상이 아닌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편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꼼수를 썼다고 주장했다.

최씨 일가는 영풍-MBK 연합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가 사실상 확실시됐던 23일 임시주주총회 전날 영풍 주식 10.3%를 호주에 본사를 둔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겼다. 국내 공정거래법상 신규 순환출자 고리 형성은 불법이지만 해외 법인을 이용해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고려아연'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고, 그 결과 영풍-MBK 측의 고려아연 의결권은 제한됐다.

MBK는 이에 대해 공정거래법 제21조에 따라 금지돼있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한 탈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MBK측은 '누구든지 기업집단 규제를 회피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36조 제1항에도 저촉된다고 보고 있다. MBK는 "우리 법은 규제 위반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회피하는 행위를 일반적·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제21조 위반과 동일하게 탈법행위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에선 가장 중한 위반행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제124조에 따라 탈법행위를 한 자는 공정거래법상 가장 중한 처벌인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상호출자 탈법 논란, 공정위 첫 조사 사례

신고서엔 최 회장 측이 SMC 주식 대부분을 매각하고도 영풍에 대한 지분율과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MBK는 "이 사건 주식 대부분은 최 회장의 친인척들이 보유하던 것으로 통상적인 경우였다면 주식 매각과 함께 영향력을 잃지만 고려아연이 이를 취득하면서 영풍에 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명백한 지배구조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가 탈법 행위로 나온다면 상호출자 금지에 대한 탈법행위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42조에 관한 첫 선례가 될 전망이다. MBK는 이번 사건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지배주주들이 동일한 방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빈틈 뚫린 공정위도 난감

공정위가 신속한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속내는 복잡할 수 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신규 순환출자 금제 규제를 도입한 후 거의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순환출자가 갑자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데다, 현행 법망을 피한 빈틈이 뚫렸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 기업인 만큼 이번 판단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향방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으로 따지면 해외 계열사가 규제 대상은 아니라 당장 최 회장 측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긴 어렵지만 공정위 입장에서 법의 근간을 흔드는 탈법행위란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한동안 잊혔던 순환출자 규제 이슈가 재점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MBK는 이날 공정위 신고와 함께 최 회장 일가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형사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이번 순환출자 구조를 원상회복시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분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소송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임시주총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과 주총결의 취소·무효 본 소송도 빠르면 오늘 개시될 전망이다. 임시주총 효력에 대한 법원 판단은 이번 공정위 조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세종=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