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재거와 '세기의 로맨스'…英 뮤즈 마리안느 페이스풀 영면

78세 일기로 세상 떠나
롤링 스톤즈의 명곡
'As Tears Go By' 불러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리안느 페이스풀과의 행복했던 한 때와 추모글. 믹 재거 인스타 캡쳐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리안느 페이스풀과의 행복했던 한 때와 추모글. 믹 재거 인스타 캡쳐
'롤링 스톤스의 뮤즈'로 불리며 1960년대 영국 음악계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AFP통신은 페이스풀의 대변인이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의 연인이었던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인스타그램에 페이스풀과 찍은 흑백 사진을 올리면서 "그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다"며 "그는 훌륭한 친구,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다.

1946년에 태어난 페이스풀은 1964년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인 앤드루 루그 올드햄이 영입했다. 그는 올드햄을 통해 알게 된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눈물이 흐르면서'(As Tears Go By)를 불러 유명해졌다. 이후 '이 작은 새'(This Little Bird), '여름밤'(Summer Nights), '루시 조던의 발라드'(The Ballad of Lucy Jordan) 등의 앨범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오토바이를 탄 소녀'(The Girl on a Motorcycle)에 출연하는 등 여러 영화나 연극 작품에도 출연했다.

페이스풀은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마약 중독과 노숙 생활 등이 겹치면서 순탄치 않았다. 19살부터 재거와 동거했으나 재거의 여성 편력이 심해 그와의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페이스풀은 재거의 아이를 유산한 이후 재거와 1970년 이별했다.롤링 스톤스는 마약, 음주, 기물파손, 폭력 등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기 일쑤였으며 페이스풀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1967년 경찰 단속에서 마약에 취한 채 모피 깔개만 걸친 채 발견됐다. 재거와 이별한 뒤 그의 삶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런던에서 2년간 노숙 생활을 했다.

페이스풀은 2014년 AFP통신 인터뷰에서 "60년대 내 기억 중 일부는 훌륭하고 일부는 끔찍하다"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는 내 추억이며 공개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79년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표해 재기에 성공했다. 1981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또 재즈와 블루스 가수로 전향해 1987년 '이상한 날씨'(Strange Weather)를 발표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가수 겸 슈퍼모델 카를라 브루니는 인스타그램에 "내 친구여, 천사들과 함께 편히 쉬라"며 고인을 추도했다. 가디언의 팝 평론가 알렉시스 페트리디스는 페이스풀에 대해 "그의 공연에는 뭔가 기묘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며 "그의 목소리는 노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갈망하는 듯하고 우울했다"고 평가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