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신고 후 진술' 무고죄 성립 인정…대법원 "자발성 기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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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신고 후 허위 진술해도 처벌 가능
경찰에 증거 제출·항의도 '자발적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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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제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9일 피고인 A씨가 수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했으나, 이는 “무고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A씨와 지인 관계인 B씨는 함께 술을 마신 뒤 모텔로 이동했다. B씨가 모텔 비용을 부담해 달라고 하자 A씨는 “술값을 내가 내지 않았느냐”며 B씨의 뺨을 때리고 멱살을 잡았다. 이후 A씨는 B씨가 자신을 유사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B씨는 폭행당하고 있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강간했다며 신고하려 한다”고 112에 신고했다.
B씨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A씨는 자신이 강제추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진술서를 작성했다. 이후에도 A씨는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같은 취지의 진술을 유지하며, 증거를 제출하고 추가 진술을 요청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1심은 A씨가 경찰에 허위 사실을 신고해 상대방을 형사처벌 받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A씨가 직접 신고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고로 조사가 개시된 상태에서 진술한 것이므로, 자발적 신고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가 경찰 출동 당시부터 지속해서 피해를 주장하고, 수사기관에 증거를 제출하며 처벌을 요구한 점을 고려했다. 이에 따라 A씨의 행위는 단순히 경찰의 질문에 답한 것이 아니라 무고죄에서 요구하는 ‘자발적인 신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고죄는 당국의 추문을 받지 않고 자진하여 허위 사실을 신고해야 성립하지만,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처벌을 요구하는 진술을 했다면 무고죄의 신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A씨는 경찰 출동 당시부터 지속해서 피해를 주장하며 증거를 제출하고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며 “이 같은 일련의 행위는 수사기관의 추문에 따른 진술이 아니라 자발적 신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