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찢어야" "윤석열 벌 많이 받고"…분노의 현수막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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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에 명절 인사 사라지고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격화하면서, 다수의 정치인이 명절 인사 대신 '분노의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은 시민들이 자극적인 현수막 내용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격' 문구 현수막 난무
급기야 현수막 훼손하는 사례도
선관위 "문구 허용 기준 명확하지 않아"
"새해 검열 많이 받으세요" vs "윤석열은 벌 많이 받고"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5일부터 30일까지 6일간의 긴 명절 연휴 기간 각 지역에서는 시민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치인 현수막이 잇따랐다. 한동안 △시민 통행 어려움 △시야 방해 등을 이유로 잠잠했던 정치인 현수막이 연휴가 길고 유동 인구가 많은 설 명절을 맞아 다시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 여러분! 새해 검열 많이 받으세요!', '재명아! 감옥 가자!' (자유통일당, 찡그린 표정을 짓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쎼쎼!"라고 외치는 모습과 함께)
'오늘은 카톡 검열 내일은 사상 검열 이재명 찢어야 내 카톡 안전하다!' (자유민주당)
친야 성향 정당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요 비판 대상이 됐다. 이들의 현수막에는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마에 '내란 공범'이라는 빨간 도장을 찍은 모습이 등장했다.
'내란공범 권영세 사퇴하라! 내란정범 국힘당 해산하라!' (진보당, 권영세 의원의 이마에 '내란 공범'이라는 글귀의 빨간 도장을 찍은 모습과 함께)
'국민은 새해 복 많이 받고 윤석열은 벌 많이 받고!'(조국혁신당)
한쪽 정당에서 현수막을 게재하면 이를 반박하거나 비방하는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붙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 '무한한 책임으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게재하자 진보당에서 해당 현수막 바로 아래에 '거듭나지 말고 해체하라!'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게재했다.
자극적 현수막으로 확산하는 시민 간 정치 갈등
27일에는 국민의힘 제주 책임당원 일동이 게재한 '비상계엄 해제에 가장 앞장서서 국민을 지킨 한동훈을 응원한다'는 현수막에 그려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얼굴에 'X' 자로 검은 래커 스프레이가 칠해진 모습이 전해졌다.
일부 시민은 현수막 글자를 오려내 내용을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게재한 '그래도 잡범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에 대해 친야 성향 지지자들이 '안' 글자를 오려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선관위 "현수막 문구 허용 기준 명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공직선거법 90조, 정당법 37조 2항과 같은 일반적인 규정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선까지 현수막 문구로 허용하는지에 관해서는 규정이 있다기보다는 건별로 판단한다"며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 된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90조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현수막 게시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한 제한이나 금지 규정은 없다. 정당법 제37조 2항은 정당이 내거는 현수막에 대해 '허용'하는 게 원칙이다. 선관위는 당장 허용 기준을 추가하거나 상향 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관계자는 "지금 사회가 조금 양분화돼 있는 상황인 만큼 기존보다 좀 더 과격하게 반응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한 달 전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가 한 번 더 검토한 후 허용했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더 허용해 주자는 입장이라 현재로서는 훼손 사례가 증가하더라도 이를 제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