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제비상경제법(IEEPA)을 근거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게재한 글에서 "불법 이민자로 인한 주요 위협과 우리 시민들을 죽이고 있는 펜타닐을 포함한 치명적인 약물 때문에 IEEPA를 이용해 관세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 엘 파소와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 후아레스를 연결하는 리오그란데를 가로지르는 국제교량인 사라고사-이슬레타 국경교의 모습을 지난달 31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인을 보호해야 하며 대통령으로서 이들의 안전은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는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 이민자와 약물이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대선 기간에) 약속했고, 엄청난 수의 미국인들이 이런 계획을 반기며 (나에게) 투표했다"고 적었다.
그가 이용한 IEEPA는 1977년에 제정된 케케묵은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8년 만에 이 법을 경제정책을 위해 활용한 첫 대통령이다. 앞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위해 IEEPA를 사용한 적 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IEEPA를 이용해서 관세를 부과하자는 것은 트럼프 캠프가 대선 전부터 검토해 온 방안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USTR 대표로 임명된 제이미슨 그리어 후보가 라이트하이저의 '오른팔'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관세가 인플레를 불러온다는 생각은 난센스"라며 관세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IEEPA는 전쟁 등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무역 상대국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기존의 협정 등을 모두 뛰어넘는 경제 통제가 필요한 만큼, 대통령에게 특수한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처음 제정될 때에는 지금처럼 국가 전체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취지로 작성됐다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를 목적으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눈여겨 본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2019년 트럼프 1기에서도 멕시코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IEEPA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에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번엔 작심하고 IEEPA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 모습이다. 취임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금이 "국가 비상상황"임을 강조하는 포스팅을 올리고, 취임 당일부터 국경에 대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IEEPA 적용을 위한 '빌드업'이었던 셈이다.
특수한 상황에 대한 위기 대응이 목적인 법률인 만큼, 이 법안을 이용해 관세를 도입한다는 것은 당초 법의 취지를 넘어서는 부분이 없지 않다. 법률가들은 공통적으로 이 법안을 이용한 관세 정책은 추후 연방정부를 상대로 하는 대규모 소송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자문단이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캠프가 IEEPA를 검토한 첫째 원인은 당시만 해도 상원에서 민주당이 우위였기 때문이다. 11월5일 선거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상하원 양원 합의가 모두 필요한 새로운 입법을 통해서 관세정책, 특히 보편관세를 시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반면 IEEPA는 국가 비상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입법권을 가진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나 기자회견에서 "의회를 거치지 않고서도 보편관세 등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캠프 안팎에서는 이것이 IEEPA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이 관세를 도입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근거법은 여러가지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대중 무역관세 부과의 근거로 사용된 무역법 301조(외국의 불공정행위에 대응)와 중국 등의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높은 관세율을 정당화하기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안보 위협에 대응) 등이 있다. 이외에 관세법 338조(미국의 상업활동을 차별하는 국가에 대응), 무역법 122조(무역수지 조정을 위해 150일간 15%까지 관세 부과 허용) 등도 검토됐다. 그러나 다른 법안들이 제시하는 근거와 적용범위에 비하면 IEEPA의 권능은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이다.
다른 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소송이 쏟아질 가능성 높은 IEEPA를 사용한 배경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신속성이다. 의회 입법을 통해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적어도 수개월이 필요하다. 시작하자마자 '천둥의 날들(스티브 배넌의 표현)'을 만들어가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는 다르다.
두 번째는 의회에서 관세 정책이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다.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민주당(민주당 지지 무소속 포함)에 비해 3석 우위다. 상원은 53명 대 47명이고, 하원은 218명 대 215명이다. 인준 절차가 진행되면 엘리스 스테파닉 유엔 대사 후보자 등이 하원에서 빠져 하원에서 2명 우위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화당 내에서 약간 명만 이탈자가 나와도 의회 통과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상원에서는 비 트럼프계 의원들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 등이 아슬아슬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오랜 절차를 거쳐서 관세정책을 추진하고도 의회 통과를 못하는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몽일 수 있다.
세 번째는 이 정책이 임기 후반부 혹은 그 이후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법정다툼에서 연방정부가 진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로서는 정권 초기에 동맹국과의 관계의 '판'을 흔드는 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 소송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트럼프 정권과 미국에 이득이 된다는 셈법이 배경에 깔려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