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먼저 때렸다…멕시코·캐나다, 中보다 관세 더 낼 판 [글로벌 관세전쟁]

국가 비상사태 선포 후 이를 근거로 관세부과
25% 관세 맞은 캐나다 멕시코, 즉각 "보복관세" 선언
10% 더 내게 된 중국, "WTO 제소하고 상응조치" 반발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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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오는 4일부터 동맹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 부과를 시작하는 방안을 확정하면서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내용대로라면 캐나다와 멕시코 기업들은 앞으로 미국에 수출할 때 웬만한 중국 기업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보복 조치를 취할 경우 대통령은 이 명령에 따른 세금을 늘리거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미국 정부의 평균 수입품 관세율(가중평균)은 현재 약 2% 수준이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엔 낮은 관세율을, 중국에는 10% 이상의 높은 관세율을 매기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후신인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협정에 따라 원산지가 확인된 대부분의 상품 수출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받았다. 원산지 규정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관세를 낼 경우에도 2.5% 수준의 낮은 관세율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앞으로 이들은 현재 관세율(USMCA 미적용시)의 10배 수준을 내야 한다. 반면 중국산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은 현재 계산법에 따라 10.3~12.5% 수준으로 평가된다. 중국산에 10% 추가관세를 적용한다 해도 중국산 수입품 관세율(20~22%)이 캐나다나 멕시코산보다 더 낮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미 100% 고율 관세를 적용해 온 중국산 전기차 등은 110%로 관세가 높아져도 타격이 크지 않고, 그동안 중국산을 대체해 온 멕시코산 상품은 중국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관세-보복관세 ‘악순환’ 시작

미국 텍사스 엘 파소와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 후아레스를 연결하는 리오그란데를 가로지르는 국제교량인 사라고사-이슬레타 국경교의 모습을 지난달 31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엘 파소와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 후아레스를 연결하는 리오그란데를 가로지르는 국제교량인 사라고사-이슬레타 국경교의 모습을 지난달 31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막판까지 ‘혹시나’ 하며 미국을 달래기 위해 국경 보안을 강화하고 트럼프 정부에 구애해 온 캐나다와 멕시코는 발끈하고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오후 주요 주지사들과 회의 후 기자회견을 갖고 “1550억캐나다달러(약 155조6000억원)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300억캐나다달러 상당의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4일부터, 나머지는 21일 후부터 발효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핵심광물, 에너지 조달, 기타 파트너십에서 여러 비관세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뤼도 총리는 미국 관세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멕시코와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던 멕시코도 즉각 보복관세를 결정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경제부 장관에게 멕시코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포함, 플랜B를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미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플랜A, 플랜B, 플랜C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중 강경한 조치를 골랐다는 뜻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또 멕시코 정부가 범죄 조직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중상모략’이라고 말했다. “그런 동맹이 있다면 바로 이런 범죄 조직에 고성능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의 총기 상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멕시코 정부가 지난 4개월간 2000만회분의 펜타닐을 포함해 40t이 넘는 마약을 압수하고, 관련 인물 1만여명을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상무부 대변인 명의로 이날 홈페이지에 담화문을 내고 “미국 백악관은 펜타닐 등 문제를 이유로 중국의 미국 수출 제품에 10% 관세를 추가 부과한다고 선포했다”며 “중국은 이에 강한 불만을 표하고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대변인은 “미국의 일방적 추가 관세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의 잘못된 처사에 대해 중국은 WTO에 제소할 것이고, 상응한 반격 조치를 취해 권익을 굳게 수호할 것”이라고 밝다.


○WSJ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

당사자 3국은 물론,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며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꼬집었다. 관세 부과로 상대국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웬동 장 코넬대 응용경제학 및 정책학 부교수는 CBS에 미국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한다면서도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부과로 각각 3.6%, 2% 실질 국내총생산(GDP) 감소가 예상되며 미국의 GDP 감소는 0.3%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멕시코는 아보카도 외에도 딸기, 라즈베리, 토마토, 쇠고기 등을 대량으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 목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캐나다의 소프트우드 목재 수입이 줄어들면 물량 부족으로 인한 건설 현장 공급난이 우려된다. 캐나다산 중질유를 주요 원료로 사용해 온 미국 정유업체들이 타격을 받고, 소비자용 휘발유 가격이 즉각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북미 전역에 걸쳐 공급망을 구성해 온 미국 자동차산업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 중국 3개국에 대해 ‘최소기준 면제’(de minimis exemption)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800달러(약 116만원) 이하 소포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주는 조항을 이용해 미국 시장을 공략해 온 알리바바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캐나다 대상 관세부과에 관한 행정명령에 따르면 불법이민자와 약물 등 유입이 중단되었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대통령은 관세부과를 중단할 수 있다. 행정명령은 "국토안보부 장관은 캐나다 정부가 협력적 집행 조치를 통해 이 공공 건강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라고 판단하면 관세는 제거된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