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뜨리는 한국 독립영화의 힘

문워크·은빛살구

문워크, 신파 배제한 비극
가족주의 해체 보여준 은빛살구
상업영화에 없는 참신함 돋보여
은빛살구
은빛살구
‘검은 수녀들’ ‘히트맨 2’ 등 대형 상업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가운데 재기발랄한 이야기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는 독립영화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독특한 설정으로 상업 영화에는 없는 미덕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 극장에서 만나야 할 독립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문워크’는 촬영감독 출신인 신현규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술만 마시며 삶을 비관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딸 ‘정희’(황지아 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희는 엄마의 방황을 끝내기 위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친구 ‘태헌’(김건우 분)과 함께 부산에서 식당을 하는 할아버지 ‘건석’(유승목 분)을 찾아내지만,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한편 엄마 ‘유선’(김민경 분)과 삼촌 ‘윤권’(송동환 분)은 가출한 정희를 찾기 위해 떠난다. 부산으로 향하는 동안 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엄청난 비극과 할아버지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할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떠나는 소녀의 발랄한 여정을 그리는 듯하지만 이 영화가 소녀의 가족을 통해 조명하는 화두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야기의 중추인 가족의 비극, 그리고 그 비극의 중심에 있는 엄마를 통해 신파적 설정의 엄마 및 모성의 재현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감독의 데뷔작인 만큼 밸런스의 미숙함도 눈에 띈다. 가령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사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만화적 효과나 정희에게 난입하는 불량 청소년들의 출현 등은 전반적인 흐름과 밸런스에 방해되는 요소다. 그럼에도 ‘문워크’는 주목할 만한 데뷔작이자 눈물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모던한 가족 영화다.
문워크
문워크
‘은빛살구’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주연배우 나애진이 ‘한국경쟁 배우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영화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 디자이너인 ‘정서’(나애진 분)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서 시작한다. 결혼을 앞둔 정서는 당장 아파트 계약금이 필요하지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에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엄마는 정서에게 돈 대신 이혼 전 아빠가 엄마에게 돈을 빌리고 쓴 차용증이 붙어 있는 색소폰을 내민다. 정서는 짐 가방에 색소폰을 넣고 아버지 ‘영주’(안석환 분)가 새 가족과 운영하는 묵호의 작은 횟집으로 향한다.

영화 곳곳에서 정서가 그리고 있는 뱀파이어 웹툰을 만화가 아닌 실사로 재현한다. 그녀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해서 말이다. 뱀파이어가 그렇듯 그녀의 가족은 서로에게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빨대’를 꽂느라 여념이 없다. 정서의 아버지는 빌딩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정서와 그녀의 약혼자를 꼬드기고, 약혼자 역시 그녀의 아버지가 차려준다는 카페에 반쯤 눈이 먼 상태다. 정서 또한 아버지가 빌린 돈을 받아내서 아파트를 얻고자 하니 가족 구성원 거의 모두가 웹툰 속 뱀파이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영화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주의를 말한다. 가족의 해체도, 분열한 가족의 재결합을 시사하는 것도 아니라 가족 시스템에서 이탈하고픈 개인을 그렸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