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트럼프發 불확실성 대처법

더 강해진 트럼프노믹스의 귀환
美경제학회 최대 화두 '불확실성'

관세, 이민자 정책 등 충격파 커
정치 변동 맞물려 환율 휘청

과거 패턴 의존하는 오류 버리고
악재 대비한 대안 정책 마련해야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경제학회(AEA)가 연초에 개최하는 연례총회는 최근의 경제학계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적 토론의 장이다. 총회 기간 내내 학계와 언론은 향후 세계 경제의 방향성에 대한 일말의 힌트라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올해는 1월 3일부터 사흘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는데 현장 행사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올해 연례총회를 관통한 이슈는 불확실성이었다. 특히 재정 지출 확대, 관세 부과, 이민자 추방 등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경제정책(트럼프노믹스)이 불러올 부정적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컸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글로벌 무역 거래 시스템 붕괴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 수익성을 악화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금리 정책 간섭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Fed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는 정치적 간섭”이라며 “Fed가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독립성이 훼손되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고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난달 20일 전후로는 워싱턴DC에 머물렀다. 워싱턴DC에서 직장에 다닐 땐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 거의 시내에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 30여 년 만에 취임식 날 시내를 거닐면서 미국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자랑스럽게 승리의 깃발을 들고 수도로 모여든 미국 공화당원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에서 지난 100년간 이어졌던 미국 역할의 변화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을 우리가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도 결국은 미국 국민의 민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도 8년 전 트럼프 1기 정부의 출발을 알리는 취임식 때 역시 워싱턴DC에 있었다. 이 사실을 일부러 기억해낸 것이 아니라 올해 취임식 전날과 당일 지하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시감이 들며 알게 됐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놀란 건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현지의 반대 목소리가 8년 전만큼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당수 미국 국민이 동조하는 트럼프노믹스의 파장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결국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고도 높일 것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최근 4주 동안의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도 잘 나타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밝힌 경제정책 방향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혼란이 맞물려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후반까지 치솟았다.

지난주 열린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이전과 같은 연 4.25~4.5%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이번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불확실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 국민의 경제 생활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에 현지 언론은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과 Fed의 통화정책 관계에 대해 제롬 파월 Fed 의장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파월 의장은 자신의 임기와 같은 정치적 질문에는 냉정하게 받아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대안 모의실험(alternative simulations)’을 언급하면서까지 친절하게 매우 상세히 답변했다.미국 법률에 따라 FOMC 회의에 사용된 모든 자료는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Fed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파월 의장도 “공개된 2018년 자료를 보라”고 하면서 트럼프 1기 정부 집권 당시 Fed가 어떻게 행정부의 정책에 대비했는지 설명했다. 즉 Fed 결정에 기준점으로 사용되는 기본 전망과 별도로 여러 가지 대안을 가지고 한 모의실험을 통해 정책 불확실성의 부정적 여파를 줄이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1년에 네 번 실행하는 경제 전망을 보면 성장, 경상수지, 물가, 고용 다음에 ‘시나리오 분석’ 부분이 있다. 거시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기본 전망’ 못지않게 ‘대안 전망’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측면에서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최근 상황에서 전망을 맞히는 우연을 기대하는 것보다 그 대안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 경영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대비책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