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도 잡힌다"…떨고 있는 범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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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텔레그램과 핫라인경찰이 지난해 9월 철저한 보안을 앞세운 해외 소셜미디어 텔레그램과 수사 핫라인을 구축한 이후 텔레그램을 방패 삼아 활개 치던 범죄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마약, 성범죄 등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투자리딩방과 같은 신종 사기까지 각종 범죄에 대한 정보 취득이 가능해지면서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수사 협조율 90% 넘어
핫라인 구축 90일간 270건 협력
'성 착취' 자경단 수사 공조 검거
마약·투자 사기 등 IP, 연락처 제공
경찰·텔레그램 공조 수사 늘며
범죄자들, 다른 채팅앱 이동 우려도

경찰, 텔레그램과 핫라인…협조율 90%
2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텔레그램과 상시 협의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해 하루평균 3회 송·수신하고 있다. 약 90일 동안 270건의 답변을 받았다.한국 경찰이 보낸 공문을 받은 텔레그램 측은 빠르면 24시간 내로 응답할 정도로 적극 협조하고 있다. 요청 사항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텔레그램이 한국에 협조하는 비율은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텔레그램은 수사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인 소셜미디어로 꼽혔다. 2019년 ‘n번방(박사방)’ 사건 때도 텔레그램은 경찰의 일곱 차례에 걸친 이메일 수사 협조 요청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리딩방·성 착취 혐의자 IP·연락처 제공
시종일관 비협조적이던 텔레그램은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8월 프랑스 검찰에 체포된 이후 범죄 혐의 정보와 관련해 협조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찰과 텔레그램 간 협력에 물꼬를 튼 수사 공조는 최근 서울경찰청이 발표한 ‘목사방’ 사건이다. 자신을 목사라고 칭한 30대 남성 A씨는 자칭 텔레그램 ‘자경단’이라는 피라미드 사이버 성폭력 범죄집단을 만든 뒤 피해자 234명을 가학적으로 성 착취한 혐의를 받는다. 텔레그램은 지난해 9월 한국 경찰에 처음으로 목사방 사건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텔레그램은 대다수 국가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수사 관련 정보를 대부분 제공한다. 투자 리딩방, 마약, 성 착취, 협박 등은 텔레그램이 사실상 100% 협조하는 영역이다. 명예훼손, 모욕처럼 한국 등 일부 국가만 위법으로 취급하는 범죄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범죄자들 ‘보안 채팅앱 이동’ 우려
일각에서는 경찰과 텔레그램의 핫라인 구축으로 범죄자들이 다른 보안 채팅 메신저로 옮겨가는 일종의 풍선효과를 우려한다. 시그널, 와츠앱 등 다른 보안 채팅앱은 여전히 경찰과 수사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메신저로 남아 있다. 보안 채팅앱은 메시지 송신과 수신까지 이어지는 경로(서버)를 수색해도 해독할 수 없는 종단 간 암호화가 가능한 앱을 말한다.시그널은 개인정보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는 메시지 앱으로 태생 자체가 도·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일명 ‘드루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이 앱을 통해 55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시그널로 계엄 관련자들과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시그널은 보안을 중시하는 국내외 정·재계 인사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마우스’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 이 앱 사용을 권하는 트윗을 올렸다. 국내에선 일부 대형 금융회사 C레벨 임원들이 시그널로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그널은 초창기 텔레그램과 닮아 있어 아직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편”이라며 “‘범죄자 대이동’이 발생하기 전에 다른 채팅앱에도 수사 협의를 지속해서 요청해 핫라인을 구축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