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교통사고 막는 앙상블 AI, 플라즈마와 만났다 [이해성의 퀀텀 솔러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기술, 우주로 간다
한국경제신문 첨단 테크 및 사이언스 담당 이해성 기자입니다. 앞으로 퀀텀 솔러스(Quantum Solace)란 이름으로 온라인 고정 코너를 연재합니다. 100여 년 축적의 역사를 딛고 비상하는 양자(Quantum) 기술을 비롯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우주·항공, 방위산업, 원전·핵융합·수소 등 에너지, 첨단 로봇, AI·퀀텀 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 전반을 깊게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홀 추력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퍼스트 버디'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군집위성 스타링크 등에 쓰는 플라즈마 추진 장치다. 고체-액체-기체에 이은 물질의 네 번째 상태로 불리는 플라즈마는 기체가 가열돼 전하를 띠는 이온과 전자로 분리된 것을 말한다. 위성 전기추진 장치 뿐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 등에 널리 활용된다. 오로라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플라즈마 현상 중 하나다.

KAIST 연구진이 인공지능(AI) 기술로 개발한 큐브위성용 홀추력기를 올해 11월 누리호 4차 발사에서 성능 검증에 나선다. KAIST는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최원호 교수팀이 인공위성과 우주 탐사선의 엔진인 홀 추력기의 추진 성능을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했다고 3일 발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홀 추력기 작동 모습.
홀 추력기는 연비가 높아 적은 전기를 쓰면서 위성이나 우주선을 크게 가속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연료 절약이 중요한 우주 환경에서 군집 위성의 편대비행 유지에 주로 쓴다. 우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궤도이탈 기동에도 유용하다. 수명을 다한 위성이 지구 궤도를 남아 돌면 '우주 교통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궤도를 아예 틀어 우주 저 멀리 날려보내는 것이다. 곧 퇴역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신해 각종 민간 우주정거장이 지구 저궤도로 올라갈 예정인데, 이런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면 안에 있는 모든 우주인들이 '우주 미아'가 돼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우주 쓰레기의 속도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위성 공전 속도인 초속 7~8km의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기 때문이다.

홀 추력기는 혜성이나 화성 등 심우주 탐사에서도 필수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여러 임무에 최적화된 고효율 홀추력기를 적시에 신속하게 개발하기 위해선 설계 단계부터 추력기의 성능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전산 해석도구를 써서 생성한 1만8000개 홀추력기 학습데이터를 토대로 인공신경망(ANN) 앙상블을 도입해 추력 성능을 예측했다. 딥러닝의 근간인 ANN은 기존 선형 회귀(Linear regression) 모델에 비해 입력값과 출력값 간 복잡한 비선형 관계를 학습하는데 유용하다. ANN 앙상블은 여러 ANN 기법을 혼합해 단일 ANN 기법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개별 ANN 예측값들의 표준편차를 계산해 즉각적으로 측정오차를 보정한다.
연구 모식도.
연구팀이 개발한 전산 해석도구는 플라즈마 물리 현상과 추력 성능을 동시에 모델링한다. 연구팀이 실제로 10개 홀추력기를 만들어 100여 개 데이터를 확보해 모델링 결과와 비교해보니 평균 오차가 10% 이내였다. 700W급 및 1kW급 홀추력기에선 오차 5% 이내, 미 공군연구소에서 개발한 5kW급 고전력 홀추력기에서는 오차 9% 이내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기존에 알려진 스케일링 법칙으로는 분석하기 어려웠던 연료 유량이나 자기장 등 변수에 따른 추력 변화와 방전 전류 등 성능 데이터 변화를 상세히 분석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왼쪽부터 김영호 박사과정, 최 교수, 박재홍 박사과정.
최원호 교수는 "이번 인공지능 기법은 홀추력기 뿐 아니라 반도체, 표면 처리 및 코팅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는 이온빔 소스 연구개발에 접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 기술을 토대로 전기추진 전문 기업 코스모비를 창업했다. 올해 11월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에서 가로 30cm, 세로 10cm, 높이 10cm 큐브 위성 K-히어로에 이 기술을 탑재해 우주에서 성능을 검증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스페이스파이오니어사업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인텔리전트 시스템'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