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해도 실형?…중대재해 재판부따라 '고무줄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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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도입 3년…양형 기준 없어 논란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서 기업 대표에 대한 실형 선고가 잇따르자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단독판사가 내리는 판결이다 보니 판사별로 형량 편차가 크고, 혐의가 비슷해도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동종 전과가 없는 상황에서 유족과 합의하고도 실형을 선고받는가 하면, 유족 합의가 없었는데도 집행유예를 받는 사례가 나오자 기업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과 없고 유족과 합의했는데도
검찰 구형보다 6개월 형량 늘어
형사합의 못한 다른 업체는 '집유'
중처법 판사 1명이 단독 심의
"판사따라 언제든 실형 나올수도"
◇검찰 구형보다 6개월 늘어나

이 판사는 성형기 안전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음에도 회사가 별도로 조처를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실형을 선고했다. B씨는 안전 점검 기관으로부터 “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24차례나 받고도 A씨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강동석 전 SPL(SPC 계열사) 대표 사건과 대비된다. 강 전 대표는 2022년 10월 경기 평택 제빵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혼합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고로 기소됐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형사6단독 박효송 판사는 “강 전 대표가 취임 4개월 만에 사고가 발생했고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선처를 구하고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족에게 민사 합의금이 지급됐지만 형사 합의는 없었다.
◇자체 양형기준도 없어
중대재해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그간 많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작년 말까지 선고된 1심 중대재해 사건 31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4건에 불과하다. 법원은 그동안 유족 합의, 동종 전과 등을 양형 사유로 감안해왔는데, 신성산업 대표 A씨는 사고 직후 빠르게 유족과 합의하고 산업재해로 처벌받은 전력도 없었다.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은 자체 양형기준이 없고, 판사 여러 명이 심리하는 합의부가 아니라 단독판사가 심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형량의 불확실성이 판사별로 클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진원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단독판사 사건은 재판부 성향에 따라 양형에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실형 선고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는 기소되면 유죄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3년이 지났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경영 리스크를 호소하고 있다. 한번 기소되면 유죄 판결이 압도적으로 많고, 실형이 선고될 경우 대표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총에 따르면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한 31건 중 유죄 선고는 29건에 달했다. 유죄율은 93.5%다.특히 대기업보다 안전관리 시스템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경영자가 전국 모든 현장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중소기업은 사전 컨설팅 비용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양시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중대재해 사건에 휘말린 기업은 사고 발생과 경영자 책임에 대한 인과관계를 수사 단계부터 엄밀하게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시온/곽용희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