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머니가 역사 지켰다" 라이엇게임즈의 특별한 기부

[인터뷰] 조혁진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대표
'조선 왕실의 뿌리' 경복궁 선원전 편액 환수
누적 기부액 93억원, '보물급' 7건 환수 지원
지난해 2월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100여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이 돌연 일본의 한 고미술품 경매에 출품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다.

해당 유물은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현판으로 추정됐다.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했던 선원전 건물 특성상 '조선 왕실의 뿌리'나 다름없는 문화유산이다.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을 지낸 테라우치 마사타케가 1916년 일본으로 반출한 뒤 한 건설업자의 가족이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 /국가유산청 제공
경복궁 선원전 편액 /국가유산청 제공
이번 경복궁 선원전 편액 환수 과정의 숨은 주역은 온라인 게임업체인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유물이 경매에 출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초 경매 출품 금액보다 높은 구입 대금을 마련해야 했는데, 이 업체 후원금 덕분에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는 27일 예정된 경복궁 선원전 편액 언론공개회를 앞두고 조혁진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다. 조 대표는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귀환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며 "이를 가능케 해준 우리 플레이어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조혁진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대표.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제공
조혁진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대표.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제공
라이엇게임즈는 미국에 본사를 둔 게임 회사로, 중국의 거대 게임·IT 기업인 텐센트의 자회사다. 우리 문화유산의 환수를 돕는 '국가유산지킴이' 사업은 한국 지사인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차원에서 2012년부터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조 대표는 "미국 본사에서도 한국 오피스 판단을 존중하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지원으로 환수한 일곱번째 유물이다. 2023년 보물로 지정된 '문조비 신원황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을 비롯해 '석가삼존도' '척암선생문집책판' '박재 이동궁명 사각호' '중화궁인' '보록' 등의 환수를 도왔다. 누적 기부금 규모는 93억원에 이른다. 연간 8억원가량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지정 기탁하는 방식이다.

국갸유산지킴이 사업은 2011년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국내 서비스 출시 시점부터 계획됐다. 한국 출시를 기념한 캐릭터 '아리'의 게임 아이템인 '스킨'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 게 시작이었다. 이듬해 게임 서비스 1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스킨 '신바람 탈 샤코'의 판매 수익금을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젊은 세대의 인기 '놀이 문화'인 게임을 서비스하는 만큼,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환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채널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 /국가유산청 제공
유저들은 "게임에 쓴 돈이 문화유산 환수로 이어진다니 놀랍다"는 반응이다. 조 대표는 "처음엔 게임 회사가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을 환수한다니 다들 의아해했지만, 10여년 간의 활동 끝에 다들 진정성을 느끼신 것 같다"며 "플레이어들이 자부심과 뿌듯함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갖고 사회환원사업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엇게임즈는 리그오브레전드 외에도 '발로란트', '전략적 팀 전투' 등을 국내에 서비스하고 있다. 조 대표는 "한국은 게임을 즐기는 문화를 비롯해 이스포츠 분야 경쟁력 등 게임 업계의 주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가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긴급 매입뿐 아니라 청소년 대상 문화유산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에도 힘을 쏟은 이유다. 조 대표는 "향후 문화유산 환수뿐 아니라 국내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