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통상 보복 우려에도…플랫폼법 만든다는 공정위·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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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규제 수준보다 과하지 않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책 등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한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화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플랫폼법 추진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공식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빅테크에 대한 섣부른 규제가 자칫 다른 산업의 ‘통상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법 처리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야당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처리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플랫폼법이 정치권발(發) 한·미 통상 리스크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국회 정무위원장에 답변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적용 검토
산업부 "美에 보복 당할 우려 커"
與도 "국익 관점 속도조절해야"

◇산업부 “美 통상 보복 우려”
16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플랫폼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시 국회의 신중한 검토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최근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해 온 플랫폼법은 점유율과 이용자 수가 일정 기준을 넘은 플랫폼 기업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불법 행위를 할 경우 관련 매출의 최대 8%(현행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임시중지명령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산업부 측은 보고서에서 “미국 민·관·의회 모두 (플랫폼법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고, 문제 제기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한·미 간 잠재적 통상 마찰 사안이 무역 보복 등으로 연결되지 않게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플랫폼법 시행이 자칫 상호관세 또는 미국 무역법 301조(외국이 불공정 무역을 할 경우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 적용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공정위는 플랫폼법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 영향력이 큰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한 뒤 법 위반 시 빠르게 제재하는 내용의 ‘사전지정제’를 법안에서 제외한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공정위는 사전지정제를 강행하려다가 업계 반발이 일자 지난해 9월 ‘사후추정제’(위법 상황 발생 이후 기업을 조사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이 이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정위는 플랫폼법 추진과 관련한 윤 의원 측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미국 빅테크에만 차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며 “사후추정제 방식을 도입한 개정안은 국내외 사업자 구별 없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상공회의소 등 관련 이해관계자와도 계속 소통해나갈 예정”이라며 사실상 법안 처리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산업부 측은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당초 추진하던 입법(사전지정제)뿐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 입장을 표명했다”고 맞받았다. 윤 의원이 이와 관련해 지난 12일 산업부·국무조정실과 공정위 관계자들을 불러 관련 사안을 보고받았으나 양측은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산업부 등 관계 부처, 국회와 긴밀히 협조해 통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이라고 말했다.
◇與 “속도 조절” 띄웠지만…
관건은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여당은 최근 미국 통상 환경 급변을 고려해 플랫폼법 처리를 재검토하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초 당정 협의를 통해 새 법안을 마련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후보자가 6일 한국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 대해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게 대표적이다. 윤 의원은 “섣부른 플랫폼법 추진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기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정부도 개별 부처의 이익이나 관점보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야당은 정무위 소위에 플랫폼법이 상정되지 않을 경우 패스트트랙을 통해 본회의에 바로 상정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통화에서 “여야 합의하에 통과시키는 게 제일 좋지만, 상황에 변화가 없으면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정소람/이슬기/정상원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