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K팝과 딥시크의 '닮은꼴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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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제약이 창의적 혁신 끌어내
고령화 위기, 성장 기회 삼아야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비슷한 현상이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미국의 대중 무역규제 아래에서 혁신을 이뤄내며 미국 빅테크산업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중 무역규제로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딥시크는 저사양 칩만을 이용해 오픈AI의 챗GPT에 필적할 만한 고성능 AI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화 학습 모델을 개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딥시크의 성공은 미국의 대중 무역규제 덕분에 가능했다. 만약 고성능 칩을 수입할 수 있었다면 딥시크도 다른 빅테크처럼 고성능 칩 확보 경쟁에 몰두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불가능했던 딥시크는 저사양 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이 오히려 더 큰 혁신을 이끄는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다. 일반적으로 제약 조건이 적을수록 더 우수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경제원리이기 때문이다. 양손을 모두 활용하는 사람이 한 손만 사용하라는 제약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K팝과 딥시크는 외부 제약이 오히려 더 창의적인 혁신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필자는 고령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가장 큰 제약이다. 이는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작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파스쿠얼 레스트레포 보스턴대 교수는 고령화가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기술 개발 방향이 다르다.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는 노동력 부족으로 로봇처럼 노동을 대체하는 자동화 관련 기술을 개발하려는 동기가 강하다. 반면, 후자는 노동집약적인 기술에 안주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자동화 기술을 발전시킨 고령화 국가의 경제성장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이들은 로봇만을 자동화 기술의 예로 들었지만 AI 또한 고령화 국가가 선택해야 할 주요 기술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미국 빅테크와 같은 규모의 AI 투자는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이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딥시크와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면 한국 기업도 미국 빅테크에 필적할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K팝의 글로벌 성공과 딥시크의 AI 혁신은 우연이 아니라 시련에 맞선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한국이 고령화라는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