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미래 바꾸는 디지털 전환(DX)의 정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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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LG화학 DX 상무는 전문 데이터 분석가팀을 꾸려 제조와 비제조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DX)을 통한 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실질적 개선 사례를 내놓으며 글로벌 수준의 DX를 선도하고 있다.[한경ESG] 리딩 기업의 미래 전략
인터뷰 - 박진용 LG화학 DX 담당 상무

LG화학은 글로벌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AI를 도입한 기업으로 꼽힌다. 화학이라는 고유 영역에서 제품 생산 관리부터 연구개발(R&D), 환경 안전, 재무, 구매 등에까지 AI를 혁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직원이 업무 개선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영역 전문가를 AI 전문가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시민 데이터 분석가(Citizen Data Scientist, CDS) 플랫폼도 구축했다.
박진용 LG화학 DX 담당 상무는 LG화학의 DX를 이끌고 있다. 박 상무를 만나 LG화학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DX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으며,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물었다. 박 상무는 “기업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AI를 통한 지능화가 꼭 필요하다”며 “몇 명의 노하우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이 장기적으로 근본적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 DX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DX는 IT 솔루션을 통해 데이터를 쌓는 정보화를 기반으로 지능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IT 솔루션으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으면, 그것을 어떤 렌즈로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에는 찾을 수 없던 새로운 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것과 관련한 데이터와 운동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면 체중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통합적 인사이트를 주는 지능화를 통해 개선점을 뽑아내는 것이 DX다.”
- 화학 산업에서 DX가 가장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가.
“제조 기업이라면 제품 생산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 최적화다. 반도체든, 철강이든 어떻게 하면 수율을 높이고 불량을 줄일 수 있는지가 메인 테마다. 궁극적으로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먼저 DX를 도입했던 부분이 품질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화학산업은 나프타를 시작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원하는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한데, 기본적으로 반응로 안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기존에는 이 화학반응을 한 후에야 제품 품질을 알 수 있었다. 운영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기에 공장 가동 7~8시간 후 생산라인에서 나온 제품의 시료를 채취해 실험실에 보내면 물성값이 각기 다른 수치를 나타냈다.
그런데 생산설비 정보를 계속 모으면 몇 분 몇 초에 들어간 원재료가 반응로에서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같은 장비라도 온도가 조금이라도 높거나, 운전 조작 세팅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수많은 데이터가 장비별로 있다고 할 때 이 데이터를 엮어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튀는 품질이 나올 때 어떻게 공정을 운영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시간 품질 예측 모델을 만들 수 있다.”
- 설비마다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나.
“그렇다. 설비마다 이런 데이터를 떨어뜨리는 시스템을 만들고, 공정 정보화(Plant Information System, PIS)를 구축해야 한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인사이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협의의 DX다. 우리는 석유화학, 첨단, 생명과학 3개 사업본부가 있다. 사업부별로 많은 제품을 생산하며, 생산라인이 제각각 다르다. 앞서 체중 관리에 대한 비유를 들었는데,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유전력 등이 제각각 다른 데다 개인마다 맞춤화하는 게 어렵지 않나. DX도 그렇다. 우리의 접근은 라인별로 정확도가 99%에서 91%로 낮아지더라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난 2021년부터 준비해 2022년 품질 예측 공통 모델을 내놓았다.”
- 모은 데이터에 AI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데이터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만든다. 이 머신러닝 알고리즘 여러 개를 조합해 사람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근 각광받는 대화형 AI다. AI는 결국 알고리즘이고, 머신러닝 여러 개를 사용자가 잘 쓸 수 있도록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AI와 머신러닝은 다르지 않고 결국 같은 것이다. 우리도 사용자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AI를 구현하고 있다. 제조에서 운전 조건을 쉽게 확인하도록 대시보드에서 제품의 품질 상태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든지, 품질 상태를 실시간 그래프로 그리는 것이다.”
“원래는 글로벌 IT 기업 IBM에서 AI와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컨설팅 부문 임원이었다. 많은 AI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러한 프로젝트가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로 선정되어 IBM 싱크(think)라는 곳에서 퍼포먼스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AI 관련 프로젝트에 관한 한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LG화학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DX를 시작했다. 2020년 봄부터 CEO의 지원을 바탕으로 LG화학에 와서 전사적으로 DX 담당 인력을 확보하고 DX 담당 조직을 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처음에 7명이던 팀원이 35명까지 늘었고, 전사에는 200여 명의 전문가를 확보했다. 현재 법인 소속으로 전사에 영향을 미치는 난도가 높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 경험치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 비제조 영역에서는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비제조 영역에서도 AI를 어떻게 도입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최근 구매 쪽에서 비중이 높은 원재료 가격 예측 시스템을 만들었다. 해외에서 대량으로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경우 그 시점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올해는 실제 구매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환율 예측 모델도 만들었다. 환율이 가장 높을 때 원화를 사는 것이다. 기존에 단순히 거래 물량을 동일하게 나눠 구매하던 것보다 효과적이라 일정 부분 예측 모델에 기반해 적용하고 있다.”
- 환경 및 안전과 관련해서는 어떤 과제를 해결하고 있나.
“에너지 최적화나 에너지 절감 측면에서 데이터와 AI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나프타 분해 설비(NCC)는 나프타를 고온으로 가열해 여러 물질로 분리한다. NCC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효율적인지 이미 최적화를 적용 중이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대표적으로 대형 장비 중 축열식 소각로(RTO)가 있다. 공정에서 열을 활용하는 장비인데, 데이터를 축적해 현재 어느 정도 탄소화합물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게 하고, 일정 수치를 넘으면 경고 안전과 관련한 모니터링을 제공한다. 또 사용하고 남는 가스를 태우는 설비(flare stack)에는 비전 분석으로 불꽃 모양을 파악해 안전을 확인다. 직원들은 AI 다큐봇이라는 랭귀지 모델을 이용해 새롭게 업데이트된 안전 지침 등을 쉽게 확인 가능하다.”
- R&D에서는 AI가 어떻게 쓰이나.
“AI는 화학 R&D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새로운 바이오 친환경 제품을 개발할 때, 석유 유래 소재가 아닌 자연 유래 소재를 넣었을 때 어느 정도여야 물성 효과 없이 똑같이 만들어지는지 등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기저귀 등 위생용품에 쓰는 고흡수성수지(SAP) 물성 예측을 통해 적정 함수율(제품이 물을 머금는 정도)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신약 개발에서도 합성 개발을 할 때 어떤 후보 물질이 항원에 반응할지 거르는데, 이전에는 항원에 따른 물질을 연구해온 전문가의 지식에 의존해 실제로 합성물질을 만들어 테스트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는 데이터를 모아 어떤 항원에 어떤 물질이 적합할지 탐색 후 합성물질을 더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 전사에 CDS 플랫폼을 적용하기도 했다.
“각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AI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전사에 시민 데이터 분석가CDS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지난 2015년 프랑스에서 개발한 파이선 기반 데이터 분석 자동화 솔루션인 데이터이쿠를 기반으로 구축했다. 데이터를 받아 프로그램을 짜고, 시각화하는 과정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도구다. 여러 도구 중에서도 가장 잘 준비된 도구라고 생각했다. 이 CDS 플랫폼을 도입한 후 현장에서 갖고 있는 데이터세트를 클릭해 플랫폼에 투입하면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아니어도 데이터 분석 모델을 만들 수 있다.”
- CDS 플랫폼이 어떻게 AI 분석을 돕나.
“머신러닝을 돌리기 전 필요한 데이터 전처리를 자동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머신러닝을 돌릴 때도 데이터 분류, 군집화, 회귀 모델, 랭귀지 모델, 비전 모델 중 이 데이터에 가장 잘 맞는 모델을 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선별해 데이터를 돌리고 결과치와 평가치를 내놓는다. 결과도 원하는 대로 시각화돼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기 데이터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첨단 쪽에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현업이 직접 담수화 설비에 사용되는 RO 필터의 멤브레인 염 제거율을 높이는 고성능 필터를 개발한 사례가 나왔다.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아 문제를 해결했고, 몇 억 단위의 효과를 얻었다.”
- 일반 직원을 데이터 분석 전문가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기업에서는 AI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어려워한다. 모든 직원이 이 프로그램에 친숙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전사 임직원을 위한 DX 이해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CEO의 전폭적 지지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기업의 밸류체인별로 각 리더가 알아야 할 DX에 대해 각각 6시간짜리 내용을 묶어 3개월치 코스를 개발했다. 임원들은 이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고, 이후 임원이 아닌 팀장들이 받는 코스를 개발했다. 이후에는 전체 팀원에게 자연스럽게 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DX팀에서 분석가들이 전사적 효과를 낼 만한 DX 과제를 만들어 실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 품질 예측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구나’, ‘이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
“모든 업무가 실시간으로 정보화되고, 지능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인사, 구매, 제조 등 대부분 밸류체인에서는 정보화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DX 전문가도 양성하고자 한다. DX 전문가 레벨 1에서 5까지, DX에 참여한 인원이 3000여 명이며 DX 전문가 레벨 3 이상 전문가가 전사에 210명 정도다. 레벨 1은 궁금해서 들어보는 수준이라면, 레벨 2부터는 과제 참여 인원에 들어올 수 있고, 레벨 3은 혼자 과제를 이끌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DX 포털에서 관리하는 DX 과제가 연간 300개 정도인데, 이 중 CDS 플랫폼을 통해 진행하는 과제가 100여 개에 이른다. CDS 플랫폼을 통해 신규로 육성된 전문가들이 전체 과제의 3분의 1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존 분석가 팀에서 과제를 할 때도 CDS 플랫폼을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 플랫폼 구축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은.
“지금까지 기반 인프라와 교육 인프라를 구축했고, DX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분석가가 성장하도록 하는 육성 트랙을 만들었는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에 큰 성취감을 느낀다. 과거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기업이 AI를 도입하기 전에는 주저하는 부분이 있지만 실제로 구축한 뒤에는 큰 만족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글로벌에서 DX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GE 항공, JAL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LG화학처럼 임직원을 대상으로 DX를 돕는 플랫폼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회사는 없다. LG화학은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1년치 오프라인 교육 수강 신청을 받았는데, 5분 안에 12월까지 다 찰 만큼 직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일본 기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이 성장 속도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구성원 직급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신입 직원이 줄어들고, 전문가들이 고령화되기 때문이다. 점점 더 인재풀이 줄어든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의 삼각형 구조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존 노하우를 내재하고 모든 영역에서 지능화할 수밖에 없다. 호주의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가 늙어가는 기업을 우려해 AI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 5~7년 연구 끝에 나오던 성과를 2~3년 연구한 이들이 낼 수 있어야 한다. 노하우의 형태로 되어 있던 영역을 표준화하면서 더 고도화해야 기업이 근본적 부분에서 살아남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더 높은 지능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과제다.”
- 최근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있나.
“화학 회사인 만큼 연구 자료를 데이터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분자식을 한 줄로 풀어 쓰는 SMILES(Simplifed Molecular Input Line Entry System)라는 방식이 있다. 이를 데이터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전에 쓰던 논문 같은 경우 이 식을 쓰지 않거나 혹은 분자모형으로 표현하는 논문 결과가 매우 많다. 비전 모델에서 이 분자식을 읽어 스마일스식으로 바꾸는 방식, 정량화된 표준 데이터로 바꾸는 것이 도전 과제다. 거대언어모델(LLM)도 곧 분자식을 읽어주겠지만, LLM 자체가 해당 분야에 특화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 이 같은 도전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통해 근본적 R&D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