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소버린 AI' 시장, 중동으로 몰리는 빅테크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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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공지능(AI) 개발업체들이 잇따라 중동 AI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석유에 치우친 산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AI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AI 허브로 중동이 떠오르면서 빅테크들의 진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프랑스의 인공지능(AI) 개발업체 미스트랄AI는 아랍어 기반의 AI 모델인 '미스트랄 사바'를 출시한다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스트랄 사바는 아랍어에 특화한 AI 모델이다. 미스트랄AI의 자체 테스트 결과, 아랍어로 대화할 때 답변의 신뢰는 92%로, 영어(78%)보다 우월한 성능을 보였다.

미스트랄AI는 "사바어(아랍어) 뿐 아니라 인도 남부지역에서 쓰는 타밀어와 말라얄람어에도 강점을 보였다"며 "중동 소버린 AI 시장에 안착한 뒤 남아시아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미스트랄AI가 중동 지역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배경엔 소버린AI가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AI 시장이 재편되면서 각국이 모국어에 맞는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수요가 확대됐다. 글로벌 빅테크가 개발한 AI로는 각 언어가 지닌 맥락과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어서다.

미스트랄AI도 이 점을 공략했다. 의도적으로 AI 모델의 매개변수(파라미터) 개수를 줄였다. 단 240억개만 사용했다. 저비용 고효율 AI인 딥시크의 'R1(6700억개)'의 3.5%에 불과하다. 이 경우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으로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AI를 경량화해 사용처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미스트랄AI에 앞서 글로벌 IT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도 지난 11일 구글 클라우드와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 AI 시장에 진출했다. 전략 컨설팅업체 KPMG는 사우디 현지 IT업체인 에다랏과 협력해 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 중에선 지난해부터 네이버가 사우디 정부와 손잡고 아랍어 LLM을 개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AI를 발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치우친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인공지능과 첨단기술 위원회(AIATC)를 구축했다. AI를 도입해 2031년까지 공공 기관 지출을 절반가량 줄이는 게 목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데이터 인공지능 청(SDAIA)을 구축하고 국부펀드의 AI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중동 AI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리서치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중동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75억 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100억 10만달러로 32.2% 증가할 전망이다. 2029년까지 시장 규모는 275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IT업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AI에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곳은 중동뿐이다"라며 "미·중 패권 경쟁에서 빗겨나 지정학적 위험도 적은 중동이 AI 허브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