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간부, 허위병가 무단결근으로 70차례 해외여행

감사원 "선관위 10여년간 채용규정위반 1200건"
근무 시간 로스쿨 강의 수강하기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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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0여년간 경력직원 채용 때마다 친인척 등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를 상습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관위 채용 등 인력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전국 17개 시도선관위에서 실시한 167회의 경력경쟁채용과 중앙선관위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24회의 경력경쟁채용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채용 때마다 위법·편법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선관위와 전국 선관위가 지난 10여년간 총 291차례 진행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 전부에서 약 1200건의 비리나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 채용 공고를 내지 않거나 서류·면접 위원을 내부 위원으로만 구성하고 채용 점검을 하지 않는 등의 위법·부당사례가 시·도 선관위에서 662건, 중앙선관위에서 216건 적발됐다. 지침을 위반 사례(중앙 131건·시·도 173건)까지 합한 총 규정 위반 건수가 1182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선관위 사무총장, 차장, 인사담당 등 총 32명에 대해 중징계 요구, 인사자료 통보 등 조처를 내렸다.

3000명에 가까운(2023년 5월 기준 2948명) 선관위 직원 중 친인척 특혜 채용자 9명을 비롯해 상당수는 규정을 위반한 채용 과정을 통해 선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경미한 규정 위반도 있어 부정채용 인원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자녀 A씨의 채용 과정에서 특혜가 제공된 사실도 확인했다. 중앙·인천선관위는 A씨를 채용하기 위해 결원이 없는데도 경력경쟁채용 인원을 배정하고, 내부 지침과 달리 전보 제한 없이 채용을 진행했으며, 공고와 다른 기준으로 서류를 심사했다. 시험위원을 김 전 총장과 근무한 적이 있는 내부 위원으로만 구성하고, A씨의 전보를 위해 재직 기간 요건을 축소하고, 관사 제공 대상이 아님에도 지원하는 등의 특혜를 제공했다. 이 외에도 7개 시·도 선관위에서 선관위 직원 친인척의 위법·편법 채용 사례가 확인됐다. 주로 선관위 고위직들이 채용 담당자에게 자신의 자녀 등의 채용에 편의를 주도록 청탁한 것이었다.

감사원은 "공직 채용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공정한 채용을 지휘·감독해야 할 중앙선관위는 인사 관련 법령·기준을 느슨하고 허술하게 마련·적용하거나 가족 채용 등을 알면서
안이하게 대응했고, 국가공무원법령을 위배해 채용하도록 불법·편법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채용 비리 관련자들이 감사 과정에서 자료를 파기하거나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증거 인멸과 사실 은폐를 시도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중앙선관위는 국회가 소속 직원들의 친인척 현황 자료를 요구하자 정보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여러 차례 허위 답변 자료를 제출하거나 사안을 축소 보고했다. 중앙선관위 박찬진 전 사무총장은 사무차장이었던 2022년 당시 자녀가 경력 채용에 합격해 직접 전입 승인 결정을 하고도 중앙선관위에 알리지 않았다가, 자녀 채용 특혜 의혹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편법 조직운영, 복무 기강 해이도 심각

감사원은 선관위 채용 비리 외에도 조직·인사 분야에서 심각한 복무 기강 해이, 고위직 늘리기를 위한 방만한 인사 운영과 편법적 조직 운영, 유명무실한 내부통제 운영 등의 실태를 확인했다. 2023년 당시 제주 서귀포시선관위 사무국장으로 근무한 B씨는 2015년부터 같은 진단서를 반복 사용하거나 허위 병가를 스스로 결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8년간 100여일을 무단 결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그는 무단 결근하거나 허위병가·가사휴가 등을 내고 약 180일 이상 근무지를 이탈해 70여차례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다. 선관위가 2·3급 및 3·4급 복수직 정원을 모두 상위 직급으로만 두면서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범위를 초과해 별도 정원을 운영하는 등 멋대로 고위직을 과다하게 운용하기도 했다.

감사 보고서는 지난해 선관위가 감사원 직무감찰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 기일이 이날로 잡히면서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공개가 의결되고 전날 헌재에 전달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4월 말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의 부정 채용 의혹을 수사해달라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해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