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복귀 이후 뒷걸음질 치는 ESG 정책…투자 매력도 '뚝'

美 투자銀, ESG연합 잇단 탈퇴
펀드자금 인출에 시장도 '휘청'
EU도 ESG 규제 피로감 확산

전문가 "투자 유인 요인 줄어
접근 방식 등 재고해야 할 시점"
전세계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백래시(반발)’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ESG 정책을 철회하면서 미국 금융권은 ESG 전략에서 잇따라 발을 빼고 있다. 유럽에서도 기업 부담이 가중되면서 ESG 규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美 금융사, ESG 연합 이탈

ESG 정책은 기업의 수익 창출이 깨끗한 공기, 인권, 정직한 경영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가능함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소규모 투자 펀드에서부터 월가의 대형 증권사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으나, 개념의 모호함과 정의 불명확성이 지적되면서 ESG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기업과 자산운용사들이 ESG 실적을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유럽과 미국 규제 당국은 ‘그린워싱(친환경 위장 마케팅)’ 단속을 강화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보수 진영은 ESG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 법사위원회는 투자 회사들에 ‘기후행동 100+’와 같은 넷제로(탄소중립) 그룹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요구했다. 공화당은 이러한 단체들이 ‘기후 카르텔’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초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은 넷제로 자산운용사 연합(NZAMI)에서 탈퇴했다. 골드만삭스, 웰스파고,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JP모간 등 미국 6대 은행들도 넷제로은행연합(NZBA)에서 이탈했다. 미국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은 새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ESG 관련 연합에서 잇달아 탈퇴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도 ESG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자들은 미국 ESG 펀드에서 약 200억달러를 인출했다. 이는 2023년 유출 규모인 130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수익률 부진에 투자자 실망

ESG 투자에서 자본이 빠져나간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투자자들은 ESG 전략의 저조한 수익률에 실망하고 있다. 대표적인 친환경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 글로벌 클린에너지 ETF’는 지난해 약 27% 하락한 반면 S&P500지수는 23% 상승했다. 올들어서도 1월 21일까지 해당 ETF는 3.83% 하락한 반면 S&P500은 2.46% 올랐다. 태양광 기업에 투자하는 ‘인베스코 솔라 ETF(TAN)’는 지난 1년간 17.98% 하락했고, 친환경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X 클린테크 ETF(CTEC)’도 같은기간 23.51% 떨어졌다.

과거 ESG 투자는 ‘전통적인 투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주요 투자 테마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금리 인상으로 기술주가 타격을 입었고, ESG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석유·가스 기업들이 당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급등 수혜를 입으며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유럽 내 ESG규제 피로감 확산

ESG 경영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던 유럽연합(EU)에서도 ESG 규제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EU 집행위원회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의 적용 범위를 대폭 완화했다.

CSDDD는 기업의 공급망 내 ESG 위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발효된 규정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해 적용 대상을 기존 ‘직원 250명 이상, 순매출 4000만유로(약 600억원) 초과’에서 ‘직원 1000명 이상, 순매출 4억5000만유로(약 6800억 원) 초과’로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지속 가능한 투자에 대한 EU 분류체계도 수정될 예정이다.

소피 프리마스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규정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하지만 기업들에게 과도한 비용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CSRD 규정은 지나치게 세부적이어서 기업들에게 사실상 ‘지옥’과 같은 상황”이라며 “EU 전체가 규제를 너무 과도하게 설정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EU의 ESG 관련 규제가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무역 조치를 통해 보복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러트닉 지명자는 “CSDDD가 미국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적절한 무역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ESG의 개념과 접근 방식을 재고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존 윌리엄 올슨 M&G 지속가능펀드 매니저는 “이제 ESG는 더 이상 투자 유치의 강력한 포인트가 아니다”며 “접근 방식과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