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올라온 K팝 '위기설'…"올해는 다르다" 자신만만한 이유 [위기의 K콘텐츠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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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년 만에 음반 판매량 감소
공연 늘리고, 신인 개발 속도 내며 '총력 방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은 K-콘텐츠. '기생충', '오징어게임', 방탄소년단의 성공으로 지난 수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떨쳐왔다. 하지만 최근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영화산업을 비롯해 곳곳에서 K-콘텐츠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경닷컴은 K-콘텐츠의 현 실상을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게재한다.

영화·드라마와 함께 K콘텐츠의 세바퀴 중 하나인 K팝 씬의 분위기는 다른 분야와 사뭇 다르다. 영상 콘텐츠 분야는 생태계 궤멸에 위기감이 팽배한 반면 K팝은 분위기가 좋다.
BTS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치고, 블랙핑크의 완전체 활동이 예정된 만큼 가요계 전반이 들썩이는 모습이다.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기설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전성기를 열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스멀스멀 올라온 위기설
해외 차트를 섭렵하며 승승장구하던 K팝은 지난해 10년 만에 음반 판매량이 꺾였다. 업계 한쪽에서 위기설이 제기된 이유다.써클차트에 따르면 2024년 K팝 음반 판매량은 9328만장으로 전년(1억1578만 장) 대비 19.4% 감소했다. '음반 1억장 시대'가 단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아티스트별로 보면 2023년 1607만장을 판매했던 세븐틴은 898만장을 파는 데 그쳤고, 스트레이 키즈 역시 1094만장에서 611만장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이들 그룹의 단일 앨범 최다 판매량이 500만장(세븐틴), 400만장(스트레이 키즈·세븐틴)에 달했던 2023년과 달리 지난해는 300만장 대가 최다였다. 1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밀리언셀러'도 24팀으로, 전년도 26팀보다 2팀 줄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BTS, 블랙핑크의 부재가 컸다고 입을 모은다. 후발 주자 중에서 이들 수준의 '메가 그룹'이 나오지 않은 게 주요 요인으로 거론된다. 특히 블랙핑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투어가 진행됐던 2023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지만, 활동이 끊긴 이듬해 곧바로 적자로 전환해 1년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음반 매출 꺾여도 비빌 언덕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K팝은 아티스트 이슈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단편적인 사례만으로 산업 전체가 위기라고 말하긴 어렵다"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영상 분야와 달리 IP(지식재산권) 활용이 쉬워 타 미디어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신인 발굴과 이들의 빨라진 성장 속도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 엔터사 대표 A씨는 "음반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위기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하지만 해외에서 체감하는 K팝의 위상은 여전히 높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도쿄에서는 공연장 대관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그는"3~4개월 전에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오사카에서도 겨우 대관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많은 팀이 일본 외에 북미에서도 안정적으로 투어를 진행하며 티켓을 팔고 있고, 꾸준히 새로운 지역도 뚫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하이브는 지난해 매출 2조2545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수치를 새로 썼다. 음반·음원 매출은 86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3% 줄었으나, 공연 매출이 4509억원으로 25.6%나 불어났다. 방탄소년단의 공백에도 총 10팀의 아티스트가 172회 공연을 진행하며 음반 부진의 여파를 씻어냈다.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8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특히 콘서트 매출이 225억원으로 88.2% 급증했다. 해당 기간 NCT 위시 12회, NCT 드림 9회, 동방신기 9회, 찬열 14회, 유타 9회 규모로 콘서트가 진행됐다.
각 사의 신인인 아일릿·라이즈·투어스·베이비몬스터·NCT 위시 등이 안정 궤도에 올라 수익화가 기대되며, 킥플립·하츠투하츠·키키까지 완성도 높은 신인도 지속해서 데뷔했다.
"포스트 BTS·블랙핑크 없는 건 문제"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의 K팝 음반 수출액(수리일 기준·HS 코드 8523.49.1040)은 8978만5000달러로 전년도 대비 24.7% 감소했다. K팝 최대 소비 국가인 일본에서 정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시그널이 감지된 것이다.
미국(0.4% 증가), 캐나다(0.6% 증가) 등 미주는 사실상 답보 상태였으며, 네덜란드(35.4% 감소), 프랑스(17.2% 감소), 영국(15.7% 감소) 등 유럽이 큰 폭으로 줄었다. 아시아권도 대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수출 감소가 나타났다.
김진우 음악 전문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일본, 동남아 현지에서 K팝 아이돌과 거의 똑같은 팀이 제작되고 있다. 한국 아이돌이라고 볼 정도로 유사한 그룹들이 K팝 대체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시장 안에서 K팝이 성장하면서 일본 아티스트들의 경쟁력을 상향 평준화시켰다. 동남아도 마찬가지"라면서 "K팝 종주국의 위치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서 긴장해야 하는 타이밍이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 쪽에선 BTS와 블랙핑크의 부재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K팝이 해외로 뻗어나가면서 콘셉트나 음악이 전부 서구팬들을 겨냥하는 쪽으로 바꿨는데 해당 시장을 타겟팅했던 두 팀이 빠진 탓에 낙수효과가 줄어들었다"며 "BTS의 군입대로 K팝 전체의 해외 추진력이 감소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는 아직 BTS와 블랙핑크를 대체할 만한 그룹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 음악 프로듀서도 "K팝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건 맞지만, 미국·유럽 등 팝 시장에서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앨범 판매고가 여전히 좋지만 K팝을 선호하는 일부 팬층 안에서 우리끼리 경쟁하고 있다는 점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