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자르자 멕시코의 색이 피어났다

[arte] 서정의 어쩌면 나만 아는 명작들

멕시코 전통을 현대 예술과 혼합한 화가
루피노 타마요(1899-1991)
루피노 타마요에게 주목하게 된 계기는 비평가 로날드 크리스트의 언급에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 세계에서 네루다의 시는 해와 같은 존재로 마치 루피노 타마요의 <수박>과도 같이 스페인어권 특유의 강렬한 천둥소리를 들려준다. 반면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달과 같아, 르네 마그리트 그림의 달처럼 프랑스적인 은은한 광채를 보여준다.” 천둥소리 같은 수박이라니! 멕시코 예술과 민중의 발견에 조형적 실험을 결합했던 멕시코 벽화 운동은, (옥타비오 파스에 따르면) 관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봉사하는 웅변조의 회화이자 몸짓이었다. 타마요는 이러한 경향성에서 머물기를 거부했다.

여기 작품 <수박>(1955)이 있다. 수박은 타마요가 반복적으로 그린 정물의 주제다. 그는 수박이 주제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이 과일은 잘라서 열었을 때 타원에서 원, 반원, 삼각형, 더 날렵한 쐐기 모양 등 기하학적 변주가 가능하다. 다양한 형태와 씨앗의 배치로써 리듬과 패턴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빨간 과육, 하얀 속껍질, 초록 겉껍질은 멕시코의 상징색과 같지 않은가. 마치 마르게리타 피자의 삼색이 곧 이탈리아인 것처럼.
루피노 타마요, &lt;수박&gt;(1955)
타마요는 1899년 8월 25일 멕시코 오아하카에서 태어났다. 1917년 산카를로스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나 전통적인 교육 방법에 실망해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했다. 1921년 초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 고고학-민족학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문화 유적들을 연구하고 거듭 그렸는데 이때 익힌 형태와 자연스러운 톤의 재현이 이후 그의 초기 정물화와 초상화에 투영되었다. 타마요는 토착 예술의 물질적 속성과 함께 신화적 주제와 비구상적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사포텍 원주민으로서 자연스러운 여정이었다.

표현 양식을 탐구하면서는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유럽 아방가르드를 연구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나는 미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으려 노력했다. 항상 스페인 정복 이전의 예술을 생각하며 사물을 변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비율은 학교에서 가르친 고전적인 비율이 아니었다. 확실히 인체의 아름다움은 7등신 비율이라는 척도에서 찾을 수 없었다. 스페인 정복 이전 예술에는 비율에 있어서 절대적인 자유가 있다.”

멕시코 고대 문명과 민속적 요소를 근대적 조형 언어와 접목

<테우안테펙의 여인들>(1939)은 사포텍 문화권의 여성들을 묘사한 초상화다. 타마요는 제한된 색상을 사용하면서도 여성들이 입은 밝은 색상의 드레스를 강조하는데, 이는 그들의 어두운 피부 톤과 대조를 이룬다. 평범한 사람들의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포착하는 의도가 잘 드러난다. 그들은 의상으로, 자세로, 위엄 있게 서 있다. 멕시코의 현대 원주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타마요의 독특한 예술적 스타일이다.
루피노 타마요, &lt;테우안테펙의 여인들&gt;(1939)
1924년, 그는 뉴욕을 방문해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의 전시를 보고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리베라, 시케이로스, 오로스코와 함께 벽화 운동에 참여했으나 이 운동의 경직성에 동의할 수 없어 그들의 이념적, 미학적 가정과 결국 결별한 후, ‘멕시코다움’의 진정한 본질을 찾아 소재, 형태, 색상 탐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형식 탐구는 벽화 운동의 사실주의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분열적이고 추상적이었다.

1938년 그는 뉴욕으로 떠나 그곳에 살면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서 더 큰 영감을 받았고 잭슨 폴록과 아돌프 고틀리브를 포함한 젊은 미국 예술가들과 공통 관심사를 공유했다. 1956년경 “내 감정은 멕시코적이고, 내 색채는 멕시코적이며, 내 형태는 멕시코적이지만, 내 개념은 혼합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토착적이고 대중적인 멕시코 전통을 유럽 예술적 현대성과 통합, 병합, 융합하여 보편적인 시각적 담론을 만들어냈다.

자신을 노동자 미술가라고 칭했던 그는 다작 작가였다. 하루에 여덟 시간 그림을 그리며 보냈고 뉴욕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한편, 1950~1960년대 파리와 멕시코시티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다가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 명예훈장, 195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대상을 받았다) 1964년 멕시코시티로 영구히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오아하카와 멕시코시티에 미술관을 설립했다. 1991년 사망할 당시 국제 미술계에서 그는 멕시코 미술의 대변인이나 다름없었다.

풍부한 색감과 촉감이 두드러지는 작품들

또 다른 <수박>(1977)에서 그의 과일들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우뚝 서 있다. 처음에는 키리코나 마티스의 영향을 받아 파인애플, 오렌지, 바나나와 같은 다양한 과일을 포함한 여러 사물을 나란히 놓고 정교하게 그렸지만, 이후 다양한 형태의 수박 조각만을 정물로 붙들었다.
루피노 타마요, &lt;수박&gt;(1977)
타마요는 가판대에서 과일을 파는 가업을 도왔던 유년기의 경험, 그리고 밝은 색채의 친근한 민중예술을 통해 색채에 매료되었다. 색채를 ‘경제적으로’ 다루는 솜씨는 그만의 개성 중 하나다. “색상을 더 적게 사용할수록 가능성의 풍부함은 더 커진다. 무한하게 다양한 안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단일 색상의 가능성을 파고드는 것이 더 가치 있다.”

타마요는 뉴욕 시절, 전쟁의 불안에 대한 우화로 해석될 수 있는 동물 싸움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타마요의 동물 그림은 반항 정신이 추상적 형태를 통해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측면을 보여준다. <달을 향해 울부짖는 개>(1942)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갈등과 관련이 있기에 이전 그림의 평온하던 정서는 색채의 강렬함과 형식적 긴장으로 대체되었다.
루피노 타마요, &lt;달을 향해 울부짖는 개&gt;(1942)
타마요는 피카소의 기념비적인 그림 <게르니카>(1937)를 연구했던 것 같다. 개가 품고 있는 불안감은 피카소의 비명 지르는 말을 떠올리게 하지만 타마요에게는 토착민의 영감이 더해졌다. 전쟁 중 사회적 의식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시각적 유산을 탐구하기 위해 유럽 모더니즘의 원칙을 적용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코발트색 하늘을 배경으로 외로운 개가 머리를 들고 울부짖는다. 피처럼 붉은 몸의 팽창된 혈관과 수축한 근육은 절박한 울부짖음을 강조한다.

인간 경험의 신화적 차원을 탐구

<새들의 친구>(1944)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대감을 묘사한다. 인물이 머리를 위로 들고 앉아 있다. 인물의 차분한 흙빛은 새의 생생하고 거의 불꽃과 같은 모습과 대조되어 역동적인 시각적 상호 작용을 만들어낸다. 붉은색 음영으로 표현되고 한 덩어리로 붙어 날아다니는 듯한 이 새들은 인물의 손짓에 화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색의 배경은 꿈인 듯 신비로운 분위기에 빠져들게 한다.
루피노 타마요, &lt;새들의 친구&gt;(1944)
<이원성>(1964)은 벽화 형식의 회화로 국립 인류학 박물관(MNA) 개관을 기념해 제작되었다. 작품은 콜럼버스 이전 세계관 및 멕시코 민족주의를 표현하고 박물관에 현대적인 정체성과 차원을 제공한다. 묘사된 것은 고대 나후아 우주 신화인 케찰코아틀(깃털 달린 뱀)과 테즈카틀리포카(재규어)의 갈등으로,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 신화에 따른 것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 징후에 존재하는 이중 원리가 그 주제다.
루피노 타마요, &lt;이원성&gt;(1964)
타마요는 표면 전체에 보색의 균형을 유지한다. 왼편에는 태양과 함께 깃털 달린 뱀의 모습을 통해 케찰코아틀 신을 대표했고 오른편에는 달과 함께 재규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테즈카틀리포카 신을 배치해 두 신의 대결을 나타냈다. 주황색 재규어는 코발트블루 배경 속에 있고 녹색 뱀은 주황색 배경 속에 있으며 신성한 동물들의 대결이 벌어지는 중심 지점에는 주홍색에서 자주색에 이르는 색조를 부여했다.

별자리에는 흰색으로 수렴하는 밝은 색조를 사용했고 뱀의 발광 효과를 위해서는 흰색을, 재규어의 윤곽을 위해서는 검은색을 채택했다. 이 강렬한 색채 구성은 일상을 초월하는 대화로 들어갈 수 있는 진입점을 제공하여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를 숙고하게 한다.

대담한 색상과 단순화된 형태라는 소통의 도구

<세 형상>(1970)은 타마요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다.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을 사용해 남자, 여자, 양성적 인물로 추정되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을 추상적으로 묘사했고 모래와 대리석 가루를 물감에 섞어 그의 특징인 표면의 거친 질감을 살렸다. 캐릭터는 긴 팔과 과장된 포즈를 특징으로 한다. 양식화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성찰과 심리적 깊이를 불러일으킨다.
루피노 타마요, &lt;세 형상&gt;(1970)
이 형상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등장하는데, 인간 조건에 대한 명상으로 보는 것부터 정체성과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논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떻게 해석하든 타마요의 이해할 수 없는 세 인물이, 무한한 시공간이 한 장면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