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과 안현배가 탐구한 에곤 실레의 진짜 얼굴
입력
수정
"에곤 실레에게 씌여진 나르시시즘 혐의를 거부한다"배우이자 화가인 박신양과 미술사학자 안현배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예술 세계를 다룬 책 <에곤 실레, 예술가의 표현과 떨림>을 펴냈다. 실레가 미술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통적으로 짚으면서도, 같은 표현주의 계열의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 박신양의 독특한 터치가 더해진 이 책은 어디서도 보기 드문 미술서이자 철학서다.
매순간 펄떡거리는 에곤 실레의 선...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by_설지연 기자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호수에 비친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시들어 죽는다. 12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에곤 실레는 종종 이에 비유되며 나르시시스트로 평가받곤 한다. 하지만 박신양 작가는 실레에게 씌워진 이런 혐의를 거부한다. 뒤틀린 신체, 앙상한 몸, 비틀린 손가락, 고통스러운 표정의 자신을 담아내며 누추한 밑바닥을 끄집어낸 그림이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환희와 경탄'으로 규정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의 질문은 나아가 '인간은 왜 그림을 그리는가' '왜 표현하는가'로까지 확장된다.
박 작가가 예술가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실레를 깊이 느꼈다면, 미술사를 연구한 안현배 작가는 인문학적 배경 설명으로 이 책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 그의 독법을 통해 실레 그림에 보다 지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두 저자를 서울 역삼동 북카페에서 만났다.
▷두 분이 어떻게 에곤 실레에 관한 책을 같이 쓰게 됐습니까.
박신양= 에곤 실레는 독창적인 면에서 참으로 강렬한 작가예요. 누구든 실레의 선이 갖는 강렬한 자기장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정도죠. 한동안 ‘선’에 대해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유심히 봤습니다.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을 다룬 영화들도 찾아봤죠. 영화는 한계가 뚜렷했어요. 그에 관한 매우 사사로운 사건들로 구성된 ‘돈이 될 만한 이야기’에 집중돼 있었어요. 심지어 어떤 강연 영상에선 실레의 그림을 두고 '자뻑'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실레에 대한 기존 담론이 너무 비본질적인 스캔들에 집중돼 있어 정작 '그의 예술이 무엇인가' 하면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즈음 메가박스에서 진행하는 '시네도슨트'에 강연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안현배 선생님을 여러 차례 뵀어요. 진심으로 청자를 위한 미술사 강연을 하는 분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술사 연구를 오래 해 온 안 선생님과 함께 책을 내게 된 것은 영광이죠.
▷최근 국내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등 19세기 말 비엔나 분리파 화가를 조명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가 열려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190여 점의 작품이 있었지만, 관객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건 단연 실레였는데요. 특히 젊은 층에 실레 인기가 유독 높은 것 같습니다.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실레 그림이 소구하는 매력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안현배=클림트와 그 동료들이 추진했던 예술 운동의 모토는 분리주의였죠. 변화 없는 답습에서 분리돼 나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었어요. 클림트와 분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세련된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긴 해도 파격적이고 거침없다는 느낌은 부족했어요. 분리주의에 걸맞은 작품은 마지막 세대에 해당하는 실레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레는 전통적인 조화와 균형을 넘어 자기 내면에 있는 집착, 욕망, 불안, 고독을 공격적으로, 또 솔직하게 표현했는데요.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로 파격적이었죠. 이런 실레의 방식, 젊은 분들에게 제일 매력적인 것 아닐까요? 청춘이 느끼는 ‘아직’이라는 초조함, 원인 모를 불안감, 그러면서도 자신을 구현하려는 욕망. 실레는 그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면서도 성공적인 롤모델일 수 있어요. 자기 안에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를 솔직하게 발산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엔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냈으니까요.
▷박 작가는 책에서 실레의 '선'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의 선에선 받은 느낌은 어떤 건가요?
박=그의 선은 매 순간 펄떡거리며 살아 있어요. 모든 극단의 개념들이 충돌하고 혼합되면서 만들어내는 강렬하고 진한 울림들. 실레의 선이 뿜어내는 강렬한 충격이 궁금했습니다. 그 배후에 어떤 것이 들어 있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유혹하며 동시에 혼돈에 빠뜨리는가. 그의 얼굴을 몇 차례 그려봤어요. 선들의 치장과 방식(당대 사조였던 아르누보 스타일 등)이 어떻게 화면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지 생각해봤죠. 선들이 단순히 형태를 설명하거나 규정하기 위해 봉사하는 역할이 아니라, 매 순간 펄떡거리며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또 대상과의 관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선에 대한 총체적 의심에 빠졌어요
.
▷어떤 의심인가요?
박=그에게 선은 자신을 그릴 때와 여인의 치마 주름, 말라비틀어진 나무, 미성년 누드를 그릴 때가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뭘 그렸던 간에 똑같은 선일 뿐이죠.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그림 속 대상, 그것의 사회적·도덕적 기준에 입각한 이미지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혼동을 느낄지 몰라도, 정작 화가 자신은 혼동하고 있지 않아요. 대상을 대하는 떨림, 세상을 향한 자세가 공통적으로 표현에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선은 존재하는가. 화가는 형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형태는 있는가. 형태를 만드는 선은 있는가, 만약 선이 없다면 형태는 어떤 식으로 있는가. 그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거기엔 어떤 의도가 들어 있는가…. 꽤 오랜 생각 끝에 '선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선으로 합의되거나 오해되는, 또는 착각되는 편의적이고 합의적인 관념’이 있을 뿐인 거죠.
▷실레가 그리고자 열망했던 주제는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관한 공포’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 주제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안=흔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실레의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했던 사건에서 찾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엔 매독 등 질병으로 가까운 가족을 잃는 경우가 흔했어요. 실레만 겪은 극단적 경험이 그림에 반영됐다고 하면 과장이 아닐까 싶어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예술가는 저 같은 일반인보다 더 깊이 느끼고 더 잘 파악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어요. 인간이면 누구나 생명, 욕망, 죽음에 관심이 있을 겁니다. 다만 실레는 그걸 더 강렬하게 느꼈고,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냈어요. 특유의 선과 뒤틀린 자세, 처연한 눈빛 같은 것들이죠.
▷박 작가는 본인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러시아 유학 시절 만났던 친구와 선생님이 그리워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간이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초적인 감정엔 그리움(노스탤지어)이 깔려 있다는 건데요. 실레가 가졌던 그리움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박=그리움은 대상과 기억의 편린과 관련돼 있기도 하지만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선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매독에 걸린 아버지를 단죄해야 하는 대상으로 대하는 건 제삼자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이죠. 그렇다고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말란 법은 없어요. 인간적인 결함이 있는 부모라 증오할지언정 동시에 그리워할 거예요. 실레의 그림에서도 그런 종류의 그리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그리움의 여러 측면과 그가 처했을 극단적인 상황의 모순들이 상상되죠.
▷‘고립되고 외로운 곳에서 실레는 자기를 괴롭히는 감정들과 싸우는 과정을 예술로 만들어 내려 했다’고 썼습니다. 실레를 괴롭히는 감정의 근원은 뭐였을까요?
안=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절과 소멸에 대한 공포를 실레 같이 자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또 욕망에 솔직했던 사람은 더 깊게 느끼고 괴로워했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실레에겐 스스로 짐을 느끼고 싸우는 과정이 그림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이 정도니까 멋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겠다고 짐작합니다.
▷자화상을 그린 화가들은 많은데, 유독 실레에 대해선 '나르시시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박=그의 자화상과 자신의 누드에선 ‘자기 모습을 경탄해 마지않는 모습과 태도'가 안 보입니다. 실레의 자화상에서 ‘자기 모습을 환희에 차서 감상하는 태도’가 느껴지나요? 그보다는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과 대상을 이루는 선에 대한 강렬한 의심과 반감, 갈등이 느껴집니다. 이는 그가 그린 대상의 사회적 통념('그리면 안 되는 적나라한 누드')과 순식간에 결합해 짧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엉망진창의 감정을 선사하죠. 감정은 오랫동안 충격으로 작용합니다. 그의 천재성이죠. 많은 사람은 그 감정의 정체를 말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아요. 달리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레에게 유독 '나르시시스트'라는 혐의를 씌우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에게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은 상당히 안 어울리며 필요에 의해 동원된 규정일 뿐입니다.
▷이 책이 누구에게 어떻게 가닿기를 바랍니까.
안=우리는 서양 미술을 해외에 직접 가서 보지 않는 한 전시회를 통해 운 좋게 기회가 있어야 만날 수 있어요. 자기만의 선과 매력을 가진 실레라는 강렬한 존재가 이런 어려움을 넘어서게 만들고, 서양 미술의 넓은 바다로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박=화가에 대해 성급히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가 세상을 어떻게 느꼈고, 왜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해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를 생각하는 사람,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영원히 좇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각자 자신을 이해하는 어떤 키워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