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메시지의 하트 이모티콘, 밸런타인데이 카드에 그려진 하트, K-pop 스타들이 팬들에게 두 손을 모아 보내는 하트는 사랑을 의미하는 세계 공용어이다.
사진. ⓒgettyimagesbank프랑스에서는 연인들끼리 혹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몽 케르, 몽 아므르(mon cœur, mon amour)라고 부른다. 나의 심장, 나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을 호칭할 때 사용한다. 그만큼 심장과 사랑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나 보다.하트는 언제부터 사랑의 상징이 되었을까? 12세기 프랑스 소설가 크레티앙 드 트루와(Chrétien de Troyes)는 사랑을 말하며 '두 개의 심장으로 하나의 심장을 만들었다(De deus cuers avez fet un)'라고 했는데, 어쩌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심장이 합쳐져 하나의 완벽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서정시
15세기 왕족 르네 당주(Rene d’Anjou)가 중세 프랑스어로 쓴 사랑의 풍자 <사랑에 빠진 심장의 책(Le livre du Cœur d’amour épris)>에는 궁중 화가 바르텔르미 데위크(Barthélemy d'Eyck)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담겨있다. 책 속의 주인공은 신분에 관계없이 사랑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표현한다. 큐피드가 잠자는 시인의 마음을 훔치는 이야기, 용감한 기사들이 수줍은 여자들을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험담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1500년경 피에르 살라(Pierre Sala)가 쓴 연애시 모음집인 <사랑의 작은 책자(Petit Livre d'Amour)>에는 노란색 날개 달린 빨간 하트를 그물로 잡는 두 여인의 모습이 있는데, 이는 르네 당주의 <사랑에 빠진 심장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피에르 살라의 두 번째 부인 마그리트 불리우(Marguerite Bullioud)에 대한 사랑을 마그리트 꽃 속에 자신의 빨간 심장을 넣는 모습으로 그려내, 부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하트를 그물로 잡는 여자들, 피에르 살라의 <Petit Livre d’Amour> 프랑스어 사본, 13 × 9,5 cm, 1500-1505년, British Library, Londres / 출처. X(옛 트위터) Archaeology & Art
피에르 살라의 <Petit Livre d’Amour> 프랑스어 사본, 마그리트 꽃에 심장을 바치는 남자, 13 × 9,5 cm, 1500-1505년, British Library, Londres / 출처. 위키피디아중세 서적에는 하트가 기하학적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하트는 처음에 수련이나 담쟁이덩굴 이파리같이 일 년 내내 푸른색의 다년생 식물로 그려져 장식적인 모티브로 사용되었었다. 13세기의 채색된 서정시(抒情詩) 사본에서 하트 모양의 담쟁이덩굴 잎을 볼 수 있다. 하트 모양 이파리가 달린 나무 아래의 두 연인의 모습은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사랑의 시를 담은 채색 서정시 사본 코덱스 마네세(Codex Manesse), 1305-1340 / 출처. 위키미디아중세 기사들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인 <알렉산더의 로맨스(Le Roman d'Alexandre)>에서는 한 여인이 기사가 전달해 준 심장을 손에 들고 있고 기사는 자기 심장의 위치를 확인하듯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 삽화를 볼 수 있다.
Jehan de Grise가 그린 <알렉산더의 로맨스> 일부 삽화, 1338-1344사랑의 심벌 하트와 거리 예술
몇 년 전부터 파리 시내의 건물 벽, 대문, 우체통 심지어 공원의 벤치가 사랑에 대한 문구와 함께 나비처럼 날갯짓하는 빨간 하트로 뒤덮였다. InLoveStreetArt라고 불리는 스트리트 작가의 작품으로, 검은 선으로 얽혀 있는 사랑의 시처럼 낭만적이고 달콤한 문구는 빨간 하트와 함께 마치 모든 연인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In love / 출처. inlovestreetart 인스타그램얼굴 없는 영국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영화감독인 뱅크시(Banksy)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풍선을 든 소녀'는 어린 소녀가 하트 모양의 빨간 풍선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구도로 사랑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Banksy, 풍선을 든 소녀, 사우스뱅크(런던)의 워털루 다리의 스텐실, 2002년 37년 제작(2004년 촬영) / 출처. 위키피디아키스 해링(Keith Haring)은 그래피티와 대중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가로 동물, 사람, 심벌, 하트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강렬하고 단순한 선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링의 작업은 AIDS, 인권, 평화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으며, 그의 상징적이고 대중적인 접근은 그래피티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쉽게 전달되는 예술의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Keith haring, untitled, 1988, 20 x 19 cm / 출처. The Keith Haring Foundation스트리트 아트는 단순히 도시의 미관을 개선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도시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거리 문화를 창조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사랑의 레스토랑
핑크빛 하트 모양의 접시 양쪽으로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있고 그 위에 겹쳐 심장의 레스토랑이라고 쓰인 로고는 1985년 프랑스 코믹 영화배우 콜루쉬(Coluche)가 설립한 '사랑의 밥집(Les Restaurants du Cœur)' 로고이다. '사랑의 밥집'은 무료 식사 제공, 사회 경제적 통합 참여 및 모든 형태의 빈곤 퇴치 활동을 통해 빈곤층을 돕고 자발적인 지원을 목표로 한 공익단체이다.
사랑의 밥집(Les Restos du Cœur) 로고 / 출처. Les Restos du Cœur 홈페이지70~80년대에 코믹 영화배우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콜루쉬는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거짓말과 공약에 반기를 들어 친구들과 내기 삼아 198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10% 이상의 투표 지지율이 예상되어 자신이 지지하는 사회당 후보인 미테랑의 표와 갈릴 위험성에 사회적 협박 등으로 유보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정부에 제안하여 설립한 사랑의 밥집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 전역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사와 식량 나눔을 계속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을 위한 사랑의 밥집 같은 공익 단체를 만든 정치인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랑의 밥집에서는 거주지 제공, 직업 알선, 법적 자문 및 행정 도움 제공, 프랑스어 수업,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빈곤층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22년에는 프랑스 전역에 7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2,200개의 사랑의 밥집에서 1억 4,200만 끼의 식사를 배급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안타깝게도 사랑의 밥집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사랑을 주면 결국 사랑을 받게 된다." - 스페인 격언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