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만병치유 기적과 죽음 사이…'야누스' 스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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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8
스테로이드 인류
백승만 지음 / 히포크라테스
316쪽│1만8000원"
개 고환에 젊어지는 물질이"
엽기 실험에서 탄생한 스테로이드
에너지 생성 도움주지만
신장 기능 저하 등 부작용 초래
피임약도 스테로이드의 산물


스테로이드에는 남성호르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테스토스테론, 여성호르몬 그룹 에스트로겐 등이 포함된다. 스테로이드는 체내에서 성호르몬으로 전환돼 임신, 근육 합성 등 몸의 여러 기능에 관여한다.
브라운세카르의 실험에서 학자들은 가능성을 봤다. 고환에서 생성되는 어떤 물질이 근육 합성과 에너지 생성에 영향을 끼친다면, 이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연구와 실패를 거듭하며 스테로이드란 무엇이고, 어디서 생겨나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점점 밝혀냈다.
책은 스테로이드 발전 역사를 네 개 성분으로 나눠 설명한다. 학자들이 처음 주목한 건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이었다. 이 성분이 발견되자 의학계는 열광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면 전립선암 발병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대신 다른 분야로 퍼져나갔다. 바로 스포츠였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육 합성을 촉진하고 운동 능력까지 향상해줬다. 야구 전설 배리 본즈 등 수많은 스포츠 스타도 테스토스테론에 손을 댔다. 고환 축소, 여유증 등 수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현재 일반인들까지 사용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 성분은 프로게스테론이다. 난소에 있는 작은 노란 조직인 황체에서 나오는 호르몬으로, 수정란이 착상하면 배아를 보호하기 위해 다음 수정을 막는 역할도 한다. 인위적으로 프로게스테론 농도를 높여 임신을 막을 수 있다. 1940년대에 제약회사 신텍스는 이를 활용하면 피임약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아직 임신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대였다. 오랜 연구와 여성 인권 운동가들의 투쟁이 필요했다. 결국 1960년 ‘에노비드’가 정식 피임약으로 승인받으며 여성들이 자유롭게 피임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잘 알려진 또 다른 여성호르몬은 에스트로겐이다. 갱년기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1970년대 불티나게 팔린 에스트로겐이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 확률을 높이는 부작용이 발견되자 학자들은 더 안전한 합성 에스트로겐을 개발했다. 예상치 못한 쓰임새도 얻었는데 바로 화학적 거세였다. 이상 성욕을 지닌 사람에게 투입하자 효과가 있었다는 실험 결과가 알려지면서다. 동성애자를 ‘치료’한다는 목적으로도 사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 ‘에니그마’를 해독한 앨런 튜링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동성애가 불법이던 영국에서 그는 합성 에스트로겐 투입을 선고받았다. 연구 중단과 신체적 변화를 견디지 못한 그는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러 부작용을 제거한 약들이 등장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남성호르몬의 95%는 고환에서 분비되지만, 나머지 5%는 부신의 껍질 부위인 부신피질에서 생성된다. 여기서 생성되는 코르티손은 우리 몸에서 염증을 제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절염 치료제로 주목받았지만, 얼굴이 붓는 쿠싱증후군과 정서 질환이라는 부작용이 발견됐다. 의약계에서는 더 나은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연구 경쟁이 펼쳐졌다. 지금도 스테로이드를 활용한 희소 질환 치료제와 더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찾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