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모비스·신한은행, '공급망 금융'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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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대출 시중銀으로 바꿔현대모비스와 신한은행이 ‘공급망 금융’ 동맹을 맺는다. 유통 협력사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기존 현대자동차그룹 여신전문금융사인 현대커머셜이 맡던 협력사 대출을 시중은행에 넘긴 ‘파격 사례’로 보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다음달부터 현대모비스의 부품 유통 플랫폼을 통해 자동차 부품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에 나선다. 부품 구매용 대출과 팩토링(매출채권 담보 대출)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의 전국 품목지원센터, 부품대리점 등 1200여 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다. 협력사 공급망 대출 규모는 연간 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앞서 현대모비스는 공개입찰을 거쳐 기존 사업자 대신 신한은행을 새 금융 파트너로 낙점했다. 신한은행은 현대모비스와 관련된 차량 정비소(3만6000개)를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비은행 이익을 확대하려는 금융권과 자금 조달, 고객 기반 확대에 나선 기업 간 합종연횡이 보다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협력사 1200여곳 대출…현대모비스, 신한에 맡겨
스타벅스·삼성 적금 통장 등 기업-금융사 합종연횡 확산
현대모비스가 그룹 울타리를 벗어나 공개입찰을 통해 새로운 금융 파트너와 손잡은 것은 협력사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다. 이번 ‘공급망 금융’ 동맹을 통해 1200여 곳의 현대모비스 부품 협력업체는 자체 부품 유통 플랫폼 ‘HAIMS’를 통해 신한은행의 구매론, 매출채권 담보 대출 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신한은행은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자체 서비스 금융(BaaS)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업 간 지급결제 생태계를 확보해 한꺼번에 고객을 유입시키는 그물망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현대모비스와의 협력은 그간 준비한 공급망 금융의 대표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두 회사 간 공급망 금융 동맹을 이례적인 사례로 꼽는다. 그룹 내 여신전문회사가 아니라 외부 금융회사를 택하면 현대모비스 협력사의 전체 거래 내역과 부품 재고 현황 등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자금 공급이 가능한 시중 은행이 공급망 사업에 더욱 적합하다고 보고 금융 파트너 교체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현대모비스가 그룹사 대신 공개입찰 방식으로 협력사 대출 사업권을 시중은행에 개방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의 협력사 공급망 대출 규모는 연간 5000억원에 달한다. 전국에 흩어진 품목지원센터(185개), 부품대리점(1066개)이 대상이다. 신한은행은 현대모비스와 관련된 차량 정비소(3만6000개)를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에도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작년부터 새 먹거리로 공급망 금융을 택하고 BaaS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은행의 BaaS 거래 업체는 2023년 3곳에서 작년 말 97곳으로 급증했다. 작년 11월에는 현대제철 비대면 판매론 서비스도 시작했다. 현대제철의 온라인 철강 판매 플랫폼 ‘에이치코어 스토어’에 입점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비대면 대출을 내주고 있다.
금융회사와 일반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확산하고 있는 분위기다. 비이자 이익을 확대하려는 금융사와 고객 확대, 원활한 자금 조달 등을 노린 기업의 목표가 맞물리면서다. 국민은행은 삼성금융네트웍스 모니모, 스타벅스 등과 잇달아 사업 협력에 나섰다. ‘업계 1등’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고객 기반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연 4% 금리’를 앞세워 삼성과 함께 만든 모니모KB통장은 사전 이벤트에만 40만 명의 참가자가 몰릴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업 영토 확장을 위해 비금융회사와의 협업을 전담하는 임베디드영업본부에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당근, 쿠팡 등과 손잡고 고객층을 두텁게 확장하고 있다. 당근페이 충전금액 기반의 당근 전용 통장인 ‘당근 머니 하나 통장’ 출시도 계획 중이다. 우리은행 역시 신사업제휴추진부와 혁신기술플랫폼부를 신사업제휴부로 통합해 새로운 거래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앞다퉈 고객 맞춤 금융 서비스를 대거 늘리면서 금융·산업 간 협력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해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