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아도 실버타운에 안살래요"…전문가의 충격 이유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저자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인터뷰

인프라 갖췄지만, 고령자 맞춤용 아냐
청소,식사 각종 편의 서비스 제공?
밥 한끼 정도 직접해야 더 건강해져
일본 도쿄의 한 세대 순환형 복합 커뮤니티 모습. 투래빗 제공
일본 도쿄의 한 세대 순환형 복합 커뮤니티 모습. 투래빗 제공
“나이가 들수록 ‘집’이라는 공간은 위험해집니다.” “실버타운이요? 저는 더더욱 추천하지 않습니다.”

최근 만난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란 책의 저자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가 들려준 얘기는 다소 의외였다. ‘집’이란 단어를 들으면 대개 안락함과 편안함을 떠올리지만, 노인은 입장이 다르다고 한다. 서울의 인기 시니어주택은 2~3년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수요자가 많다. 그런데도 신경건축학자인 김 대표는 실버타운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사진. 최근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란 책을 펴냈다.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사진. 최근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란 책을 펴냈다.
구체적 이유를 들어봤다. 고급 실버타운일수록 피트니스 센터와 도서관 등 커뮤니티 시설은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그는 “운동기구가 최신식이긴 한데, 고령자 맞춤형이 아니라 낙상 등 위험이 있어 보였다”며 “도서관도 잘 꾸며놨는데 정작 사람이 없어 휑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외관은 멋들어지지만, 전반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우중충한 공간으로 느껴진다는 평이다.

고령의 입주자를 대상으로 청소나 식사 등 각종 편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노인들이 밥을 한 끼 정도는 직접 해 드시는 게 좋다”며 “요리할 때 머리도 많이 쓰고, 동작도 많고, 집중도 하게 돼 치매 예방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냥 ‘돌봄’만 해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 노인들의 활동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돌봄 제공에만 치중하는 노인복지시설은 폐쇄적이고 단절된 상태로 운영돼 노인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버타운과 요양원 등 노인 대상 ‘시설’이 고령자로만 이뤄져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만 몰아넣는’ 시설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같이 사는 세대교류형 단지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대표 사례다. 김 대표는 “일본의 은퇴자 주거단지 ‘미나기노모리’에선 (노인들 대상으로) 분양이 잘 안되자, 분양가의 60% 수준으로 할인 판매하는 방식으로 30~40대를 들여와 성공을 거뒀다”며 “도쿄 ‘에고타노모리’에는 학생과 신혼부부, 노인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세대순환형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2019년부터 2년간 서울 강동구의 도시경관 총괄기획가를 지냈다. 당시 강동구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경로당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노인복지관이지만 아이들이 와서 책도 읽을 수 있는 카페를 만드는 등 1층을 ‘모두의 거실’로 꾸몄다”며 “최근 사람들이 데이케어센터를 혐오시설로 인식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레 교류하다 보면 혐오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핸드레일 등 고령자를 위한 장치가 갖춰진 화장실. 투래빗 제공
노인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보다, 고령자가 본인의 집에서 잘 생활하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시설을 짓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노인 입장에서도 ‘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계속 노후를 보내는 게 그들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좋다는 점이다. 노인만 모여 있는 곳에서 돌봄을 받는 것보다, 익숙한 동네에서 계속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간과 구조물을 ‘노인 친화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노인 사고의 약 63%가 낙상인데, 대부분 집에서 발생한다. 나이가 들수록 집이 위험한 공간이 된다는 뜻이다. 근력과 균형감각 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 안에 있는 문턱이나 단차, 화장실 타일 등이 노인한텐 위협이 될 수 있다. 오래 서 있지 못하는 만큼, 화장실에 핸드레일이나 의자 등이 있으면 좋다.

외부 공간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서울시 과제를 수행하면서 서울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관찰 연구한 바 있다. 집 안에 있으면 갑갑하기도 하고 전기세 등도 아끼기 위해 고령자들이 밖에 자주 나오는데, 막상 이들이 나가서 머무를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단지 내 벤치를 여러 개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등받이가 없는 벤치는 노인이 이용하기 불편하다.

디테일에도 신경 써야 한다. 예컨대 한 단지의 정자는 모서리마다 의자가 설치돼 있는 구조였는데, 의자의 등받이가 안쪽에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곳을 보면서 앉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김 대표는 “마주 보는 형태로 등받이 위치를 바꿔야 서로 얼굴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다”며 “노인이 밖에 나가 일이나 봉사활동을 하든, 혹은 이웃과 수다라도 떨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의 시선을 고려해 아파트 동 측벽에 동호수를 크게 써놓은 사례. 투래빗 제공
또 나이가 들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시선은 아래로 향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표지판 등은 위쪽에 있다. 아파트 동 출입구 표시가 대표적이다. 노인의 시선을 고려해 아파트 동 측벽에 동호수를 크게 써놓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노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들의 상황과 입장, 심리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정부는 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김 대표는 “재건축·재개발을 하거나 신도시를 만들 때 서비스지원형 고령자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가의 실버타운이나 외딴곳의 요양시설보다, 지역 내 요양시설과 데이케어센터를 많이 지어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는 'AIP(Aging In Place·기존 집 계속 거주)'와 'AIC(Aging In Community'·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끌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내년 65세 인구가 전 국민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합니다. 은퇴한 시니어 세대에게 건강과 주거가 핵심 이슈입니다. ‘집 100세 시대’는 노후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택 솔루션을 탐구합니다. 매주 목요일 집코노미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