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안한 시간도 일한 것"...1억 더 달라는 버스기사[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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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 사이 대기시간도 근무" 5명 6억 청구
"세차, 청소도 근무 인정해야" 주장
법원 "회사 간섭 없이 배차 간 휴식할 수 있어
세차, 정비엔 추가 수당 지급돼 근로시간 아냐"
전문가들 "운전기사, 감단직 소송서 중요 쟁점"

버스 배차 사이 대기 시간과 차량 세차, 정비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억대 추가 임금을 청구한 버스 기사들이 법원서 패소했다. 법원은 사용자가 대기시간에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고 기사가 휴식 시간으로 활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면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버스 기사나 회사 공무용 차량 운전기사 등의 주행 사이 대기시간 등이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분쟁이 부쩍 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최근 한 운수 회사 소속 버스 운전기사 A씨 등 5명이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운행 사이 대기시간도 일한 것"...5명이 6억원 청구
전세버스 운송 업체에서 여수 산업단지 근로자들의 출퇴근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해 오던 같은 노조 소속 A씨 등 전현직 근로자 5명은 회사를 상대로 "근로시간 계산을 다시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배차 사이 30~40분에 이르는 대기시간과 차량 세차, 정비 및 청소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돼야 한다"며 "그렇게 치면 업무 중 중간 휴게시간 3시간을 공제해도 하루 16시간씩 버스를 운행한 셈"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따라 이들은 "주휴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유급수당, 유급휴일근로수당, 특근수당, 상여금, 조정수당 등 각종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이들이 추가로 청구한 추가 임금은 한달 300~400만원 꼴로, 1인당 많게는 총 1억4400만원이었다. 5명이 청구한 총액수는 6억원에 달했다.이에 회사 측은 "실제 근로시간은 일평균 11.5시간에 그쳤다"고 맞섰다. 회사는 단체협약에 따라 '고정 시간외근로시간(고정OT)'제도를 도입한 상황이고 그 시간 안에서 모든 연장근로 업무가 이뤄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근로자들의 '대기시간' 등 운행 외적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법원은 작업시간 도중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이 있어도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게 아니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면 근로시간으로 본다.
○법원 "사용자 간섭 없이 배차 사이 휴식...근로시간 아냐"
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통근버스 운전직 근로자들은 근무 특성상 근로시간 대부분을 사업장 밖에서 보냈고, 각 노선별로 기점과 종점,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달랐다"며 "같은 노선도 운행 차량별로 출발시간, 종료시간이 각 다르기 때문에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이어 법원은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배차시각을 변경하는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대기시간에 회사가 간섭하거나 감독할 업무상 필요성이 크지 않다"며 "운행 출발시각이 일일 배차표에 미리 정해져 대기시간을 휴식으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 소속 차량이 사용할 수 있는 일부 차고지나 정차지가 있던 것도 근거로 들었다.차량 세차, 정비 및 청소 시간도 별도로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사들이 차량정비로 시간을 쓴 경우 초과근무 비용을 청구할 수 있고 회사는 초과근무 비용을 지급했으므로, 상시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고정OT 근로시간에 청소 등 잔업시간을 고려한 것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증거로 낸 '수기 운행기록'에 대해 "대기시간을 포함하고 있고 일부 운행기록은 한꺼번에 일률적으로 작성됐다"며 "차량 내재 운행기록이나 공식 시스템이 아닌 시각을 근거로 운행시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대기시간을 둘러싼 분쟁은 주로 경비원 등 감시단속적 근로자나 운전기사 등 운행직 직종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대기하는 시간에 청소, 검차 등을 했더라도 식사를 하거나 TV 시청 등 자유롭게 휴식을 취했다면 대기시간 전부를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이정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휴식시간이나 수면시간이 근로시간에 속하는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휴게 중인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휴게 장소의 구비 여부 등 실질적 휴식권을 보장해줬는지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