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3년째인데 20%도 안차…외면받는 바이오클러스터

규제 늪 빠진 K바이오
(5) 전국에 바이오클러스터 난립

바이오 육성·지역균형발전 내걸고
전국 시도마다 클러스터 세워 난립
입주할 기업은 없는데…관 주도 한계

수요조사나 인프라 구비는 안돼
운영 법률만 7개…통합관리 난항
경북 안동 경북바이오2차산업단지는 지난해 말 기준 입주율이 14%에 그쳤다. 2019년부터 조성돼 2021년 첫 입주가 시작됐지만 약 3년 동안 입주율 20%도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인근에는 안동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되고 있다.

경기지역 한 바이오클러스터내 공용 연구시설엔 정부 예산으로 구입한 세포배양작업대, 멸균기, 원심분리기, 단백질분리정제기 등이 있었지만 거의 이용하지 않아 먼지만 쌓여 있다. 충청지역 한 바이오클러스터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고 식당 카페 등이 근처에 없는 데다 단지만 벗어나면 논두렁이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어렵게 젊은 직원을 뽑아도 툭하면 이직하는 바람에 경영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바이오클러스터가 뚜렷한 컨트롤타워 없이 전국 곳곳에 무분별하게 조성되고 있다. 제대로 된 수요조사와 인프라 구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잇달아 세워지다 보니 기업들이 외면하고 바이오 생태계 조성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입주할 기업 없는데 ‘우후죽순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는 15개 시·도에 25~30개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시·도마다 약 2개씩 세워지면서 기업 입주율이 저조한 클러스터가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바이오클러스터 입주율·분양률 자료에 따르면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입주율은 지난해 말 기준 66.7%에 그쳤다. 이 단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6개 국가 기관이 있고 LG화학, HK이노엔, 메디톡스, 바이넥스 등도 입주한 국내 대표 바이오클러스터다. 1997년 조성이 본격화돼 2008년 제1단지, 2021년 제2단지가 완공됐다. 최근 3년간 입주율은 63~66%로 변화가 거의 없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여전히 빈 땅이 많아 곳곳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토지 분양률은 82.1%로 다소 높다. 업계 관계자는 "토지가 저렴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아놓고 실제 입주할 생각은 안 한다"고 전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21년 첫 입주가 시작된 경북바이오2차산업단지의 지난해말 입주율은 14%, 2023년 본격 입주가 시작된 포항강소연구개발특구의 입주율도 10%를 기록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동의 경우 준공 전 상태여서 지번이 확정안돼 입주율이 저조할 수 밖에 없었다"며 "선입주시 할인혜택을 줬기 때문에 현재 입주가 이뤄지고 있고, 올해 준공이 되면 입주율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 첨단의료복합단지도 2013년 준공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입주율은 81%에 그쳤다. 전남 화순 바이오클러스터도 2010년 백신산업특구로 지정됐지만 분양률이 86%다. 인근에 화순생물의약 제2산단·제3산단이 조성될 예정이다.

강원 춘천·홍천 지역에는 현재 바이오클러스터가 네 개나 있는데도 여섯 개가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클러스터만 만들어놓으면 기업이 올 것으로 착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고 지적했다.

◇모여도 시너지 못 내

바이오클러스터는 기업과 바이오 유관기관이 밀집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에선 기업과 병원, 연구소 등이 맞닿아 있어 언제든지 관계자들끼리 만나 소통할 수 있다. 입주 기업들은 이용료만 내면 실험, 임상, 생산, 사무실관리, 장비 관리, 폐기물처리 등이 모두 원스톱으로 처리돼 연구개발(R&D)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클러스터는 병원, 대학이 없는 데다 허허벌판 위에 기업이 입주할 시설만 덩그러니 지어 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인천 송도(세브란스병원)와 경기 시흥(서울대병원) 등이 유일하게 큰 병원 유치에 성공했지만 병원 개원까진 몇년이 남은 상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클러스터 기업들은 기술의 제품화, 사업화, 마케팅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협력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20~30대 연구인력들이 수도권 도심지 근무만 선호한다는 점이다. 대전 클러스터 역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국가 R&D기관과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등 1세대 바이오기업들이 대거 입주했지만, 수도권과 멀다는 점 때문에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SK바이오사이언스), 화순(녹십자) 등 일부 지자체는 세제 혜택을 내걸어 대기업 유치에 성공했지만, 추가 대기업 입주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호열 전남바이오진흥원장은 "지방엔 대중교통이 부족해 대부분 장거리 자가 출퇴근을 하는 인력이 많다"며 "지방 시군이나, 인근 특화단지에 근무하는 인력은 근로소득세 면제 등 파격적인 지원과 더불어 우수한 정주여건 조성, 주거 무상제공, 교육환경(예 특목고 입학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지방 근무를 촉진시키고 지방기업의 고용부담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조성되다 보니 정권별, 기관장별로 부침이 심하고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스턴 클러스터처럼 민간이 개발과 운영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래 아주대의대 교수는 “보스턴은 기술 경쟁력 있는 기업만 클러스터에 살아남는 구조인 반면 한국 클러스터에선 ‘퍼주기’식 연구개발(R&D) 예산에 의존하는 기업이 많다”고 했다.

우리도 미국처럼 민간 주도 바이오클러스터가 활성화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천병년 우정바이오 대표는 “민간이 주도하지 않고 정부에서 수십개, 수백개의 클러스터를 만들어도 업계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며 "건물만 계속 짓기보다 신약개발강국, 의료기기개발강국이 되기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상래 교수는 민간 바이오클러스터의 모델로 수원의 아주바이오플랫폼과 아주대병원 등 산·학·병·연 네트워크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아주대의대가 의료진을 중심으로 의료기술 사업화에 앞장서면서 기업 수요에 맞는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분산되는 연구개발 역량

클러스터 관리 주체도 제각각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바이오클러스터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만 해도 산업단지법, 경제자유특구법, 연구개발특구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 과학기술기본법, 첨단의료복합단지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 7개가 넘는다. 관련 부처도 산업부, 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별 지자체 등으로 나뉘고 조성 초기엔 국토교통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도 관여한다. 관리 주체가 모호하다 보니 같은 클러스터 내에 어떤 업종의 기업이 얼마나 매출을 내는지, 몇 명이 근무는 지 정보 취합도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주원 KISTEP 인재경영실장은 “바이오클러스터별 상이한 근거법과 제도는 운영체계의 모호함을 낳는다”며 “국가 차원의 바이오클러스터 통합 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오클러스터가 난립해 연구 역량이 분산된다는 점도 문제다. 신영기 서울대 약대 교수는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고정관념과 ‘정부 주도로 하면 된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오클러스터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국 클러스터를 서로 연결해 경쟁력을 키우는 묘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수진 의원은 "바이오클러스터는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 임상·규제 지원과 기술 사업화 연계를 포함한 전주기적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기업 수요를 반영하지 않은 정책으로는 글로벌 바이오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韓 바이오 R&D 예산 美의 30분의 1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미래신수종산업인 바이오에서 국가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역량이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1개 정부 부처의 2024년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은 총 2조 2138억 원이다. 이는 미국 보건복지부의 R&D예산(68조7000억원)의 30분의 1수준이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173개 주요 제약바이오기업의 R&D규모는 2023년 4조원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미국의 대형 제약사 한 곳(MSD) 연간 R&D비용(44조원)의 11분의 1수준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11개 부처에서 운영 중인 산업클러스터(특구)는 총 87개다. 지역별로는 총 2437개 지역이 특구·산업클러스터로 지정됐다. 기재부는 최근 경제적 효과나 종합적인 로드맵 수립이나 조율 없이 지역 간 형평성에 중점을 두고 특구를 지정하면서 난립하게 됐다고 보고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첨단바이오의 경우 전국 17개 시도 대다수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상태”라며 “다수의 지역에서 유사·중복 지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비효율이 발생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원 실장은 "대통령실 내 과학기술비서관, 국가바이오위원회 등 최근 이루어진 바이오 분야 거버넌스 개편을 통해, 현재 부처별·지역별로 분산되고 있는 관리 체계에 대한 연계 및 개선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