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땅' 배우들의 '만땅' 서스펜스 <올드 맨>… 진실은 늘 침묵 속에!

[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정통 첩보 스릴러
7부작
이건 애초부터 잘 될 드라마가 아니었다. 늙었다. 다 늙었다. 온통 늙었다. 극 중 주인공들도 늙었고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도 늙었다. 주인공 댄 체이스(원래 이름은 조니, 나중 이름은 피터 콜드웰 등등 숱하게 이름을 바꾼다)를 연기하는 제프 브리지스는 1949년생으로 76세이며 상대역 해롤드 하퍼 역의 존 리스고는 1945년생으로 80세이다. 둘 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연기도 어기적어기적한다. 영화도 어기적어기적 느린 호흡이다. 그러나 웬 걸. 7부작에 이르는 이 드라마 <올드 맨(The Old Man)>은 서스펜스가 ‘만땅’이다. 정통의 첩보 스릴러로서 미스터리와 긴장감이 넘친다. 최근 OTT 작품 중 몰입감이 가장 좋은 작품이지만 숨겨져 있다. 그리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지 못했다.
&lt;올드맨&gt;에서 주인공 댄 체이스 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 / 사진출처. IMDb&lt;올드맨&gt;에서 주인공 댄 체이스(제프 브리지스). 댄 체이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 침투한 CIA 요원 출신이다. / 사진출처. IMDb
&lt;올드맨&gt;에서 주인공 댄 체이스 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 / 사진출처. IMDb&lt;올드맨&gt;에서 주인공 댄 체이스(제프 브리지스). 댄 체이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 침투한 CIA 요원 출신이다. / 사진출처. IMDb
<올드 맨>의 시대 배경은 현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오간다. 전쟁은 1979~1989년인데 후반기쯤이다. 미국 CIA가 탈레반과는 다른 무장 군사단체 무자헤딘을 지원하고 러시아(당시는 소련)를 상대로 대리전쟁을 펼치던 때이다. 소련군이 철수한 이후 탈레반은 다시 미국을 상대로 해방전쟁을 벌인다. 파스튠족 우즈베크족 하라라족 등 무수한 군벌들의 이합집산이 힌드쿠시 산맥을 따라 이어진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주인공 조니, 곧 댄 체이스는 전쟁 초기에 아프가니스탄에 침투한 CIA 요원이었다. 해롤드 하퍼는 조니의 CIA 백업 요원이었다가 지금은 FBI 방첩부 부부장이다. 권력자가 됐다.이런 드라마일수록 인물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이름과 극 중 배역을 잘 따라가야 한다. 모든 인물의 배우 이름까지 다 외울 수는 없다. 일단 아프간 쪽 인물들이 은근히 중요하다. 조니는 아프간 침투 과정에서 조국인 미국을 배반했다고 지목받고 수십 년을 반역죄로 수배 중인 인물이다. 미국에서의 반역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조니의 아프간 탈출 그리고 미국 정보부로부터의 추적을 따돌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해롤드 하퍼다. 조니는 탈출할 때 여자 한명과 함께 했는데 아프간 유력 군벌이었던 파라즈 함라드(나비드 네가반)의 아내 벨로르 타르파르(림 루바니)였다. 두 연인은 미국을 떠돌며 숨어 지내면서 딸을 낳는데 이름은 에밀리(알리아 쇼켓)이지만 현재는 앤젤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녀도 FBI 방첩대 소속으로 놀랍게도 해롤드 하퍼의 오른팔이다. 하퍼는 앤젤라가 친구인 조니, 곧 댄 체이스의 딸이라는 걸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해롤드 하파커는 아들을 잃었고 앤젤라를 대신 자식처럼 아껴 왔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은 바로 위, 인물들 설정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지레 지쳐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만 저쯤에서 읽기를 포기했다면 이 드라마 <올드 맨>이 무슨 얘기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해석은 놓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아 그리고 한명이 더 있다. 댄 체이스가 도피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자이다. 이름은 조이 맥도널드이다. 조이 역의 여배우 에이미 브레넘은 마이클 만 감독의 전설의 영화 <히트>(1995)에서 강도단 두목 닐 맥커리(로버트 드 니로)의 여자가 되고 상처를 받는 인물로 나온다. 아마도 그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드라마에도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인물 설정이 비슷하다. 평범한 이혼녀였다가 댄 체이스와 함께 다니며 첩보기술과 은둔 기술을 익히게 되는 여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여인 조이과 댄 체이스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가장 상업적인 러브 라인으로 일부 시청자는 그게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다소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광들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데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코드네임 콘돌>(1975)을 떠올릴 것이다. 거기서도 평범한 여성이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 첩보 일을 돕게 된다. 어쨌든 여배우 에이미 브레넘도 이제 환갑이다. 그녀도 영화에서 다소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반복하지만 영화의 인물들이 온통 늙었다. 다시 한번 더 반복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해롤드 하퍼(존 리스고)는 주인공의 CIA 백업 요원이었다가 FBI 방첩부 임원이 된다. / 사진출처. IMDb
드라마 <올드 맨>의 大컨셉은 카인과 아벨이다. 아담과 이브의 자식 카인과 아벨은 형 동생 사이였다. 하나님이 아벨만 예뻐하자 카인이 그를 돌로 쳐서 죽였으며 하늘은 그에게 낙인을 찍어 에덴 동산 한편에서 떠돌며 살게 했다,는 것이 성경 신화의 요약본이다. 이 얘기는 사람들에게 수백 수천번 되새겨지며 해석과 재해석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카인과 아벨의 성경적 해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 원초적으로 생성돼 있는 죄의식에 대한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구원과 희생의 과정에 대한 얘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카인을 향해 아벨에 대한 앙갚음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가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한 것이며 그 스스로 구원받는 일을 찾으라는 뜻이었다. 카인은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간다.이 드라마 <올드 맨>은 궁극적으로 미국이 저지른 중동 지역의 정치적 군사적 죄과를 극 중의 두 인물이 개인의 역사로 갚아 나가며 스스로의 삶, 인간이 이루어야 할 사회적 삶의 성찰을 깨달아 감으로써 그 죄의식을 희석시켜 나가는 이야기이다. 댄 체이스와 해롤드 하퍼는 친구 사이지만 조국이라는 불가항력의 추상적 대의 앞에 서로를 배신하거나 죽음을 사주하기도 한다. 해롤드는 댄이 다시 정보부 망에 드러나자 그의 체포에 앞서 먼저 암살하려 한다. 해묵은 비밀들, 추악한 음모의 얘기들을 다시 땅에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롤드 역시, 친부인 댄 체이스처럼 부하인 앤젤라(혹은 에밀리)를 보호하려 애쓴다.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싸움은 그렇다 치고 둘은 딸, 혹은 양딸 같은 후견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다. 카인이 그랬듯이 이 둘 역시 자신의 죄과를 스스로 짊어지려 한다. 그 고뇌가 돋보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올드 맨>이 왜 올드맨들의 얘기인지를 알게 만든다. 그 같은 고민과 인간이 지녀야 할 희생과 구원의 가치를 아는 세대는 이 시대엔 올드맨 밖에 없기 때문이다.
FBI 방첩대 소속으로 해롤드 하퍼가 친자식처럼 아끼는 에밀리(알리아 쇼켓). 댄 체이스의 딸이기도 하다. / 사진출처. IMDb
해롤드 하퍼는 중간에 이런 얘기를 한다. “파라즈 함라드가 캐려고 하는 비밀은 무엇일까?” 이 드라마가 갖고있는 궁극의 미스테리이다. 함라드는 왜 잘 숨어다니는 댄 체이스를 드러내게 했을까. 그가 알고 싶어 하는 비밀은 무엇일까. 이미 자신의 와이프를 데리고 도망갔으며 딸의 존재까지 알고 있지않는가. 휙 지나쳐 버리는 소련 군정보총국 GRU의 대장 슬레이만 파블로비치란 존재, 그리고 구리와 우라늄과 리튬 광산에 대한 얘기를 족집게처럼 귀에 담게 된다면 당신은 이런 첩보 드라마를 볼,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진실은 침묵 속에 존재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사람은 오래 살아서 아는 것, 겪은 것이 많은 게 아니라 오랜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 많다.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때로는 진실로 신통 맞게도 그 과거가 지금의 현재를 살리곤 한다. ‘올드맨’이 그려 내는 수많은 경구의 실천학이다. 진실은 침묵 속에 있으며 인생은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고 절대로 상대적이다. 그 철학을 곰곰이 되새기며 보면 여러 가지 삶의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즌2는 국내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