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엘, 성대결절 '링거 투혼'으로 몰두한 연극 '꽃의 비밀' [인터뷰+]

연극 '꽃의 비밀' 자스민 역 배우 이엘
/사진=파크컴퍼니
모델 같이 큰 키에 도시적인 외모, 털털한 성격, 여기에 사회적인 문제에 자신의 소신을 밝혀온 그는 '당당함'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연극 '꽃의 비밀' 무대에선 첫 등장만으로 충격과 웃음을 안기는 존재가 됐다. 배우 이엘의 이야기다.

공연에 앞서 대학로에서 마주한 이엘은 "'코알못'(코미디를 알지 못한다)의 첫 코미디"라고 작품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고, "아직도 어렵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하지만 성대 결절에 살이 5kg이나 빠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에 관객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북서부 작은 시골 마을 빌라페로사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며 살아가는 4명의 주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빈둥거리는 남편을 대신해 함께 농사를 짓고, 교류하며, 가족같이 가깝던 이들은 남편들끼리 축구를 보러 간 어느 날, 여자들끼리 위해 즐기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각본과 연출은 소문난 이야기꾼인 장진 감독이 맡았다. 공연 첫해부터 해외에 수출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꽃의 비밀'은 올해 10주년으로 다시 무대 위에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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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은 장영남, 조연진과 함께 빌라페로사 최고의 술꾼 자스민 역으로 캐스팅됐다. 본래 극 중 '최고 미녀' 설정인 모니카 역으로 먼저 제안받았다는 이엘은 "장진 감독님의 꼼수였던 거 같다"며 "먼저 대본부터 읽으라고 하셨고, '제가 모니카가 괜찮겠냐'고 했는데 며칠 후 '그러면 자스민을 하라'고 하시더라. 그 후 프로듀서분과 같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코미디도, 이렇게 끌고 나가는 캐릭터도 자신 없다'고 했는데 결국 하게 됐다"고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걱정도, 고민도 많았지만, 그때 한 1년은 쉬던 시기였어요. 연기를 하고 싶던 시기였죠. 가만히 있다보니 생각도 많아지고 더 불안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한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너무 어렵고, 장영남 선배와 (조)연진의 자스민을 보며 '어떻게 더 표현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자스민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설정으로, 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여기에 남장까지 하게 되면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 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인다. 이엘은 "스스로도 망가지거나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두려움이 없고 '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하려니 주저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관객들과 만나면서 '이런 걸 좋아하시는구나'라는 걸 직접 느끼며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수염도 눈썹도 더 과하고 진하게 그린다"면서 웃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자스민을 연기하다 이엘은 성대결절까지 왔다. 연습이나 공연이 없을 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서 '꽃의 비밀'에 임하고 있다. "쉬면서 5kg 정도 야금야금 살이 쪄서 연초에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해야겠다' 싶었는데, '꽃의 비밀'을 하면서 목표 체중을 찍었다. 체중 감량에 효과 직빵"이라면서도 "저뿐 아니라 모두가 치열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다른 배우들까지 치켜세웠다.

"저는 뮤지컬 '그리스' 앙상블로 먼저 데뷔했어요. 노래는 못하지만.(웃음) 연극의 매력은 관객들에게 바로바로 받는 반응이에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도 실시간으로 리뷰가 올라오고, 게시판도 있지만 호의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아 찾아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연극은 좋은 반응을 바로 느낄 수 있으니 매력적인 거 같아요."
/사진=파크컴퍼니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게 답하면서도, 칭찬에는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스민과 이엘 본체의 싱크로율은 곳곳에서 일치해 보였다.

이엘 역시 빌라페로사의 4인방처럼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며 "공연을 본 친구들은 술주정 연기에 '날로 먹는다'고 놀린다"고 해 폭소케 했다. 그러면서 빌라페로사 '절친' 각각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스민처럼 "친구들의 비밀을 알아도 얘기하지 않는 게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거 같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의리'를 전했다.

길거리에서 구조한 고양이들을 모시는 집사이자, 추운 겨울을 나는 고양이들을 위해 직접 닭가슴살을 삶아서 나눠준다는 이엘이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드러나는 성품에 "몰래 구조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부끄러워하며 "사람을 살리는 기부는 많이들 하니까, 저는 길에 있는 아이들을 구조하고 치료를 위한 곳에 기부하는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뽐내는 이엘이다. 그에게 차기작을 묻자 SBS 새 드라마 '사마귀'를 비롯해 몇몇 작품들과 얘기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실험적인 즉흥극도 선보이기로 했다"면서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공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공연을 할 때마다 후회해요. 특히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꽂고 있을 땐 '이 힘든 걸 왜 한다고 했나' 하죠.(웃음) 그런데 커튼콜 때, 이렇게 환호성을 받는 캐릭터를 처음 연기해본 거 같아요. '내가 노력해서 찾아가는 것들이 이렇게 관객들에게 와닿았구나' 싶은 게 바로 보이니까. 그 마지막 표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게 되는 거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