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도 뚫은 알짜 중기, 상속세 무서워 家業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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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대물림 덧씌워 최고세율 50%…OECD 2위
◇ 상속세 부담에 매각 줄이어
1977년 조성환 대표가 설립한 삼화는 입생로랑 샤넬 디올 등 해외 명품 브랜드에 납품했다. 비상장사로 2023년 매출 1513억원에 14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오래전부터 2세 경영을 준비했지만 자녀가 6명인 상황에서 상속세 재원을 무리하게 마련하기보다 지분을 미리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사모펀드(PEF) 운용사 LX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된 폐배터리 재활용업체 새빗켐은 갑자기 늘어난 증여세 탓에 어쩔 수 없이 경영권을 넘긴 사례다. 새빗켐은 2020년 박민규 창업주가 아들 박용진 이사에게 지분을 증여하며 가업을 승계하려 했다.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추진한 상장이 독으로 작용했다. 2022년 코스닥시장 상장 때 적용된 기업 가치가 증여 당시 가치보다 훨씬 높게 평가받아 증여세 부담액이 수백억원으로 늘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터리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며 2023년 적자로 전환하자 매각을 택했다.
디스플레이 장비를 제조하는 상장사 에스에이티이엔지도 비슷한 이유로 20여 년간 이어온 가업을 정리했다. 이 회사는 갑작스러운 창업주 별세로 상속세 수십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난달 경영권을 부동산개발업체 글로벌씨앤디에 팔았다.
◇ 주식으로 상속세 낸 기업 중 40% 망해
어떻게든 상속세를 내가며 가업을 이어가려 한 기업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박수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상속세를 주식으로 대신 낸 기업 311곳 중 휴·폐업한 회사가 126곳(40.5%)에 달했다. 주식 물납 형태로 상속세를 납부한 기업 10곳 중 4곳이 수년 안에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주식 물납으로 지분율이 급락한 상속인은 대부분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거나 경영 의지가 꺾인다.중소·중견기업은 과중한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더 많은 기업이 매각의 길을 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해 이런 의견을 수렴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600억원인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1200억원으로 늘리는 안 역시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아 추진 동력을 잃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상속세는 가업 승계 의지를 꺾는 구조를 고착화한다”며 “가족만큼 해당 기업에 애정이 있는 경영자는 없는 만큼 특수관계인의 도덕적 해이는 막으면서 더 성장하려는 기업을 막지 않는 형태로 상속세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환/박종관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