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재·창호 싹 다 바꿔야할 판"…건설사들 '처참한 상황'

분양가 밀어올리는 '규제 쓰나미'
서울 분양가 1년새 17% 급등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공사비 부담, 정부예측 2배
층간소음·안전 규제도 강화
건설사 "미분양 증가 악순환"
오는 6월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A건설사는 비용 부담에 고민이 깊어졌다. 전용면적 84㎡ 기준 가구당 공사비 증가분이 정부 예측치(130만원)를 두 배 웃도는 293만원으로 추정됐다. A사 관계자는 “제로에너지 규제를 충족하려면 옥상 대신 측면에 특수 자재를 사용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하는데 비용이 두 배가량 든다”며 “공사비 상승과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쌓이는 가운데 각종 규제 부담이 가중돼 사업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털어놨다.

아파트 분양가격이 공사비 상승, 금융비용 증가에 각종 규제가 더해져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8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최근 1년간 공급된 단지 기준)는 3.3㎡당 4428만원으로 두 달 연속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6.9% 뛰었다.

친환경과 층간소음 규제 등 공사비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책이 우후죽순 쏟아져 연내 서울 분양가가 3.3㎡당 5000만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6월 30일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으로 제로에너지 규제가 확대된다. 단열 성능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에너지 자립률 20~40%를 달성해야 한다. 층간소음 규제도 부담이다. 서울 일부 자치구에서는 법적 기준(4등급)보다 강한 기준(1~3등급)을 요구하고 있다.

공사비 상승이 분양가를 끌어올리고 그에 따른 사업성 악화로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분양가 상승이 주택시장을 옥죄는 주요 요인”이라며 “제로에너지나 층간소음 같은 규제를 기간을 두고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로에너지·층간소음 규제…"올 분양가 평당 5000만원 넘을 것"
분양가 상승 부추기는 정책, 우후죽순 쏟아져

“올해도 공사비가 최소 10% 오를 것 같습니다.”(대형 건설사 분양 담당 팀장)

원자재값·인건비 상승 등 공사비와 분양가 인상 요인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당장 오는 6월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에 제로에너지 건축물 5등급 인증(에너지 자립률 20~40%)이 의무화된다. 제로에너지 인증이 시행되면 단열재, 고성능 창호, 태양광설비 등을 도입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 최근 5년간 분양가 인상을 부추기는 규제만 근로시간 단축, 레미콘 토요휴무제 등 7건에 이른다. 여기에 층간소음 보완시공 의무 적용, 준초고층 피난안전구역 설치, 전기차 화재대응시설 의무 구축 등 대기 중인 법안도 적지 않다.

◇품질과 안전 기준 강화로 공기 늘어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상승 요인은 줄잡아 열 가지에 이른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건설업계 발을 묶는 대표적 리스크로 꼽힌다. 한국건설관리학회가 민간 전문가 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따른 ‘작업시간 단축으로 인한 공사비 증가’가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레미콘 휴무제(토요일 타설 금지)와 공휴일 공사 금지도 공사비 증가와 연결된다. 작업 시간 단축으로 노무비가 증가해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인한 건설 현장 안전 강화도 비용 상승 원인 중 하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관리 시설과 인력 등이 추가되면서 관련 비용만 10%가량 증가했다”며 “처벌이 두려워 현장을 떠나는 직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강도 강화, 사전 방문 의무화 등도 공사비 상승을 부채질한다. 서울 등 도심에는 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주요 아파트 공급원이다. 재건축 공사비 검증 강화와 과도한 공공기여도 분양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층간소음 기준은 갈수록 강화하는 추세다. 층간소음을 줄이려면 고성능 완충재를 써야 하는 만큼 공사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중간 성능검사에서 기준에 못 미치면 보완 시공해야 하는 리스크도 따른다. 기준을 맞출 때까지 마감재 등 후속 공사는 중단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부담이 가중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규제보다 더 깐깐한 기준을 요구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컨대 국토교통부의 ‘층간소음 해소방안’ 발표 이후 법적 기준(4등급)보다 강한 기준(1~3등급)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 때 층간소음은 현행 법령 기준 충족 여부만 확인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며 “과도한 요구를 하는 심의위원은 지자체 차원에서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층간소음 강화 등 줄줄이 대기

최근엔 미국 관세전쟁과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여파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 층간소음 보완시공을 권고에서 의무사항으로 강화하는 법안과 준초고층 피난안전구역 설치 법안도 발의됐다.

업계에선 정부가 추정하는 공사비 증가액보다 현실은 훨씬 가혹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예컨대 국토부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에 따라 공사비 증가액을 전용면적 84㎡ 기준 가구당 130만원 수준으로 추정했지만, 건설업계에선 최소 300만원이라고 본다.공사비 상승 요인이 갈수록 늘자 실수요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건설 원자재 가격과 근로자 임금이 지속해서 오르는 가운데 추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연내 서울 분양가가 역대 최고가인 3.3㎡당 5000만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은 “민간 지원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주택공법이 도입되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혁/심은지 기자 twopeople@hankyung.com